담벼락! 어릴 적, 남의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해놓고 주인이 볼까 줄행랑치던 시절의 이름이라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그 시절, 장난기 발동한 어린아이들의 흔치 않은 놀이였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는 곳은 사각의 높다랗고 웅장한 거대한 흰 담장의 건물! 흰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교도소입니다. 이곳은 죄를 지어 형기가 끝날 때까지 살아가는 곳입니다.
남들의 흉측한 시선 때문에 담벼락 옆으로 커다란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서 가려져 있었는데 그토록 새파랗던 나뭇잎들이 곱고 고운 아름다운 단풍으로 변해 한 잎 두 잎 떨어지다 이제는 을씨년스럽게 벌거벗은 나목으로 변해 담벼락이 흉물스럽게도 다가옵니다.
푸르름을 자랑하는 봄, 여름, 가을도 아름답지만 초겨울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듯 털어내고 빈 나목으로 우뚝 서 있는 것도 아름답게 자신을 비워내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15척 높은 담장 속에서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200~300명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이곳저곳 구경하는 형제, 주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형제, 주님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 형제 등 많은 형제들이 두손을 모으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모습이 아릅답습니다.
세상에서 손가락질하며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죄인 된 몸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매주 담장 속을 찾아와 예비자 교리를 가르쳐 주시는 자매님, 한 계단씩 올라가며 레지오 회합을 하는 형제님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2014년 12월 1일 대구 교도소 성마태오성당에서 이송을 왔지만 천주교 담당 교도관님이 바로 연결해줘 미사, 레지오, 자매 모임 등을 참석했습니다. 미사 시간에는 젊은 신부님의 열정 어린 강론 말씀도 은혜로 다가왔고 자매 모임에는 자매님들과 복음나누기를 하면서 은혜로운 시간들로 채워져 기뻤습니다.
젊은 신부님 인도 아래 천사의 소리 합창단에서 울려퍼지는 미사곡은 장엄했습니다. 성가를 듣는 이로 하여금 많은 은혜가 전해졌을 것입니다. 민들레 자매님팀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은 담벼락 속이 아닌 사랑방 같아서 함께 우애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랑에 힘입어 형제들은 날로 변해가고 하느님 자녀로서 중심을 잡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사랑으로 함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매 모임이나 레지오, 미사를 통해 받은 사랑을 나보다 못한 형제 제 손길이 필요한 형제들과 함께 나누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담벼락에 그리스도의 찬미가가 널리 퍼져나가는 그런 공동체의 담벼락을 만들고 싶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바보처럼 살다가 바보처럼 떠나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진정 사랑해야 할 주님을 사랑하며 후회없는 인생을 마감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살다가 천국으로 가는 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하며 예수님처럼 사도 바오로처럼 아름다운 고백을 남기고 떠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담벼락 공동체 사람들은 날마다 주님을 찬미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바쁘신 시간을 내시어 공동체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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