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기운을 냅시다! 모든 신자 가정에 사랑 넘치는 따뜻한 한 해가 되길 축원합니다.”
새해 들어서도 교회 안팎 일로 분주한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의 미소는 지난해 방한해 숱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었다.
지난해 9월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 현지에서 첫 삽을 뜬 ‘강정 생명평화사목센터 및 강정공소’ 건설 현장을 누구보다 애절한 마음으로 지켜봐온 강 주교는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을 떠올리게 한다. 제주도 해군기지와 사목센터, 엄청난 규모의 차이를 떠나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있는 강고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웬만한 다윗의 돌팔매로도 무너뜨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기에 최일선에 서길 주저하지 않는 그의 선택은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신자들마저 하느님 자리에 국가를 앉혀놓고 그 국가를 훼손 불가한 최고의 가치, 신성한 존재로 여깁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습니다. 바로 국민이 국가 주인인데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의식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숱한 문제와 모순들의 뿌리에 잘못된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강 주교의 진단이다.
“국가는 국민이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국가가 있고 국민이 있는 게 아니고, 국민이 있고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게 국가인 것이지요. 그렇기에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민을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겪으며 오랜 세월 쌓여온 반그리스도적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식별 능력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한 교회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게 강 주교의 생각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는 것은 보시고 만족하고 기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평화는 이처럼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얽혀 화합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태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만끽하고 완성으로 나아가는 게 평화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창조의 완성이 평화인 것입니다.”
강 주교는 강정에 들어설 사목센터가 무엇보다 평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힘주어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주위에 있는 이웃만이 아니라 온 세상 피조계의 완성을 내다보는 전망을 지닌 사랑의 존재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이 평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강 주교의 말 마디마디에는 스스로 평화와는 거리를 둘뿐 아니라 평화의 배반자가 되어가는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짙은 회한이 배어있는 듯했다. 이 때문에 올 6월 모습을 드러낼 생명평화사목센터는 무엇보다 평화의 진원지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 전쟁과 관련된 현장을 가장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제주도입니다. 그 가운데 강정은 평화를 위한 살아있는 교육 현장인 셈입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하느님께서 평화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실 때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순례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
실제 제주도에는 일제가 최후의 항전을 위해 조성해놓은 지하벙커와 고사포 진지, 비행장 격납고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또한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4·3 관련 유적지와 해군기지까지 전쟁과 관계된 현장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무수한 아픔의 현장들을 보며 더불어 공감할 수 있을 때 그리스도인으로 늘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게 강 주교의 생각이다. 이런 이유로 사목센터가 제주교구 신자들이나 제주도민들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뜻이다.
“사목센터는 비록 조그만 공간이지만 이것이 작은 씨앗이 돼 무수히 많은 평화의 열매를 맺어가길 바랍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순례자들이 찾아와 하느님의 참 평화를 함께 생각하고 배우고 찾아가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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