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무심결에 놀라 발길을 멈춘다.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밟지 않으려는 마음, 순간 시야에 들어온 솔방울에 대한 경이로움이 교차된다.
흰 눈 내린 추운 겨울이지만 절개와 꿋꿋함의 기개를 지닌 소나무는 혹한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다. 그에게서 열매 맺은 솔방울들이 따뜻한 그의 품을 벗어나지 않으려 꼭 매달려 있는가 하면, 이미 떨어져 땅 속에 묻혀 썩어가고 있는 솔방울도 있다.
평소 가슴에 새겨 두었던 “영원히 변치 않을 손 그 분뿐이로다”라는 성가를 떠올리며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이 굵직하고 위엄 있는 소나무를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 만물의 창조주, 생명의 근원이신 분!
그 분의 지체인 우리들은 마치 소나무에 매달린 솔방울과 같다. 어떠한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성을 상징하는 소나무, 그 지체인 솔방울은 끝내 땅에 떨어져 흙과 함께 썩어지고 거름이 되어 다음해 새로운 생명을 또 다시 만들어 낸다.
이것은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를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우리는 저마다 각기 다른 인격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모상대로 창조된 그분의 지체이며 한 형제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낮은 자의 모습으로 와서 우리가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큰 사랑을 남겼다. 우리는 그분을 인류의 빛이라 표현한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을 머금은 빛이 될 수 있다. 인류의 빛이 되신 그분의 삶에 동참하면서 나 또한 그렇게 창조된 거룩한 존재임을 신앙으로 고백한다.
하느님께서 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하셨듯이 도자기를 빚는 나에게 흙은, 생명을 머금은 씨앗이며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거룩한 질료다.
흙은 나의 삶과 신앙을 표현하는 매개물로서 흙을 통해 생명이신 하느님을 만나면서 생명을 빚어내는 빛의 존재로 거듭난다.
사랑하는 이웃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의 일을 할 때에 나와 함께 이러한 마음을 나눠 갖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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