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길을 고생해서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참으로 허탈해할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에 따르면 지난 성가정 대축일에 아기 예수님상이 빈 구유만 남겨놓고 갑자기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마 어린아이들이 뭘 모르고 그저 예수님과 함께 놀고 싶은 마음에 어디론가 모셔갔을 것이라고 짐작은 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황당한 일입니다.
성탄 전날 밤, 성탄전야미사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그중에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서 칠흑같이 어둔 밤에 유일하게 불을 밝힌 성당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던 이날 밤,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구유에 모시고 시작했던 이날 전례는 그러나 결코 고요하지 않았습니다.
기쁨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거리낌이 없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미사 전례의 경건함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없는 듯합니다. 북을 치고 일어나 춤을 추는 것도 모자라 괴성을 질러대며 예수님의 탄생을 요란하게 축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한국에서 맞이했던 성탄과는 또 다른 느낌의 성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성탄절에는 성탄 맞이 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성탄절 저녁에는 성탄 맞이 디스코파티가 열렸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아기예수님 덕분에 젊은이들은 정말 실컷 놀고 즐긴 셈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요란하게 노래 부르고 춤추고 축구시합을 하는 동안에 축제의 중심에 계셔야 할 예수님은 어느새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습니다.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요즘, 예수님보다도 산타클로스가 더 환영받는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디에서나 관심에서 벗어난 채 구유에 누워계신 예수님은 정말 외로운 겨울을 보내고 계실 것 같습니다.
이곳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성탄절 분위기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특히 추운 이 시기에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 자선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춥고 배고픈 시기요?” 지금 남수단은 일 년 중 제일 덥고 풍족한 수확의 시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인데요. 누구를 특별히 도와주나요?”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질병과 전쟁에 고통받는 남수단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가져다주는 희망과 평화의 분위기는, 제가 느끼는 남수단의 성탄절만큼이나 무척 낯선 것 같습니다.
부디 구유에서 사라진 아기 예수님이 실종된 것이 아니길 바라며, 모두의 마음 안에 다시 돌아올 예수님을 위한 구유가 준비되기를 기도합니다.
▲ 지난 성가정 대축일 쉐벳에서는 빈 구유만 남겨둔 채 아기 예수님상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 남수단과 잠비아에서 활동하는 수원교구 선교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계좌 03227-12-004926 신협 (예금주 천주교 수원교구)
※ 수원교구 해외선교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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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사제들과 함께할 다음과 같은 봉사자를 찾습니다.
- 사회복지, 의료분야, 영어교육, 태권도교육 등
※ 문의 031-548-0581(교구 복음화국 해외선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