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람들을 특징짓는 중요한 생각 중의 하나는 ‘선민의식’입니다. 선민(選民)의식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고 그 후손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식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부심이자 종교 생활의 근간을 이룹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45 19,2)는 하느님의 명령과 함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 곧 부정을 멀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종교생활의 일부가 됩니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부정을 멀리하려는 여러 가지 제도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레위기와 마르코 복음이 전하는 내용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병을 알리고 병이 사라질 때까지 공동체와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공동체 전체가 부정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병을 격리해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예수님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전히 악성 피부병은 치유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들은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도움을 청합니다. “스승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나병은 여전히 부정한 병이었고 그것에서 깨끗해지는 것은 그가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음을,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 치유를 청하는 이의 믿음입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무런 방법도 없이 병이 사라지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의 이런 믿음은 예수님의 능력과 권한을 잘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예전에 사용하던 요리문답의 한 문장이 생각납니다. “천주 전능하시뇨? 천주 전능하시니, 하고저 하시는 바는 무엇이든지 다 하시느니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어투로 된 표현이지만 오늘 복음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믿음과 관련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나보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행한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공동체적인’ 믿음을 조금 더 강조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가톨릭 교회의 믿음은 공동체적입니다. 나 혼자만의 구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 전체가 구원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 교회 전체를 위해 기도하고 또 이미 죽은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벅찬 일인데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이것보다 더 위로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 다른 이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기도하지 못할 때, 다른 이들 역시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힘들고 지친 이들이 있다면, 또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다면 기쁘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 그들도 역시 나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고 기도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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