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봄이 되면 특히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그것은 아마도 고단한 마음에 평안함을, 대자연이 숨 쉬는 그곳에서 얻기 위함이 아닐까. 숲속을 거닐면 대체로 진달래, 라일락과 같은 향기로운 꽃나무들에 눈길이 가고 거기서 기쁨과 생기, 위안의 휴식을 얻는다.
그러한 가운데서, 비록 화려한 색과 그윽한 향기의 아름다움은 지니지 못했지만 푸름 하나로 자라있는 고사리를 볼 수 있다. 고사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지만 하느님이 지으신 대자연의 신비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흔히 어린아이들의 작은 손이 어떠한 일을 해낼 때 “고사리 같은 손 좀 봐”하면서 대견해 한다. 작은 손, 작은 정성이 해낸 일에서 신비롭고 경이로움을 보며 그렇게 감동을 표현한다. 나는 고사리를 볼 때마다 성모의 겸손을 떠올린다. 고운 인정의 눈길조차 받지 못했지만 푸름 하나로 그 아름다운 산을 덮고 자라난 고사리들처럼, 보잘 것 없는 시골처녀의 신분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고개 숙여 응답한 봉헌의 삶이 또한 그러하지 않았을까.
세례성사를 받고 이미 그 분의 자녀로 사는 우리는 봄을 특별하게 맞이한다. 사순시기가 봄의 계절에 있고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기도를 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기를 보내며 해마다 다시 태어나는 큰 은총을 얻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가져온 인류 구원 이전에 성모가 몸소 보여준 낮은 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겸손의 덕을 묵상한다.
성모의 잉태(수태고지)는 겸손함의 상징이다. 성모는 기쁨의 노래(마니피캇)에서 비천한 이를 들어 높이신 하느님을 찬양하며, 낮은 자의 봉헌을 보여주셨다. “당신 뜻이 제게 이루어지소서.”(루카 1,45)라는 고백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이미 아셨음일까?
수태고지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참혹한 십자가 수난의 잉태이다. 그의 조건 없는 수락은 자신과 아들에게 주어질 고통을 감수 인내하겠다는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다. 그 분은 나를 온전한 인간의 길로 이끌어 주는 마음 안의 등불이다.
앞서 가신 김수환 추기경은 옹기를 ‘겸손한 신앙’이라 표현하였다. 나 또한 흙으로 빚는 항아리를 성모의 겸손한 잉태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내가 빚는 커다란 옹기항아리, 그것은 고통을 품어 안은 온전한 사람 성모의 자궁이다. 이 시간 흙을 빚는다. 그곳에, 나는 세상에 갓 태어난 아가들의 주먹이 펴지지 않은 채 머금고 있는 순수함을 생각하며 고부라진 고사리를 새겨 넣는다. 이것은 티 없이 깨끗한 성모가 낮은 자의 모습으로 수태고지 하는 모습의 상징이며 지금 사순시기에 내가 끊임없이 지녀야 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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