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눠준다는 말보다는 사람들에게 옷을 골라 가질 기회를 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공짜로 옷을 받아도 자기가 원하는 옷이 아니면 돌아가지 않고 불평을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받는 것에만 익숙해서 고마움을 모르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상황에서 받은 것에 감사하라고 만족을 강요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의 패션 감각과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은 한국 사람들과 다릅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일부러 구멍을 내고 찢어서 판매하는 명품청바지들은 이곳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합니다. 청소년들은 해어진 청바지를 받은 것에 불만족스러워하며 멀쩡한 옷을 고르기를 원합니다. 설령 그 청바지들이 유명한 메이커에 비싼 값에 한국에서 팔리는 청바지라 할지라도 그들 눈에는 단지 구멍나고 해진 헌 옷일 뿐입니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은 일부러 헌 옷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싶어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새 것처럼 보이는 옷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옵니다. 이처럼 가난하지만 자기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옷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는 없습니다. 늘 힘세고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이 더 욕심을 내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장애인들과 노약자들은 소외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선, 장애인들과 노인들 그리고 나환자들을 챙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들 취향에 맞는 좋은 옷들을 미리 골라 놓은 뒤 그들을 초대하여 옷을 나눠줬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비록 무슨 옷이 좋은지 고를 능력은 없었지만 옷을 첫 번째로 받게 된 것에 기뻐하며 만족하고 돌아갔습니다. 노인들은 멋진 옷보다는 따뜻한 옷들을 골라 가져갔습니다. 따뜻한 밤을 지낼 수 있도록 담요를 하나씩 선물하자 더없이 만족한 표정으로 감사를 표하고 돌아갔습니다. 나환자들 또한 옷을 마음껏 골라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마을청년들이 옷을 골라갈 차례가 되었습니다. 자물쇠로 잠가둔 담장문 바깥쪽에는 어느새 엄청난 수의 인파가 모여 있었습니다. 이대로 문을 열면 혹시라도 인명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열 명씩만 들여보내 옷을 고르자고 사람들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을 다짐받았던 약속과는 달리 문을 열자마자 너도나도 뛰어들어 옷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은 도저히 통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옷 무더기를 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달려드는 사람들, 마음에 드는 옷을 두고 서로 잡아당기며 다투는 사람들, 그 와중에 허락 없이 창고까지 열고 들어가 몰래 옷을 꺼내가려고 하는 사람들. 마치 폭동과 약탈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결국 도움을 주기 위해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마을의 평화를 깨뜨린 채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늘 좋은 모습만을 보기를 기대하며 사랑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물질 앞에 무너져버린 신뢰와 사랑은 분명 저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줬습니다.
오늘 묵상 중에 문득,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앞에 두고 그분의 옷을 빼앗아 나눠가졌던 군인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원조를 제공하는 교회의 사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릴 수 있는 선교가 되기 위해 더욱더 고민하고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 한국에서 보내온 옷들을 살펴보고 있는 마을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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