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호롱불은 해가 진 깜깜한 밤에 불을 밝히는 도구로써 실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오늘날 빛은 여러 가지 쓰임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빛은 쓰임의 도구로서는 같지만 사물의 빛이 아닌 인간의 빛이다.
왕림, 과거 ‘갓등이’라 부르던 그곳엔 사제를 양성하는 수원신학교가 있다. 까만 밤하늘의 별빛이 무색하리만큼 아름다운 ‘사람의 빛’이 이곳에서 고요히 빛나고 있다. 신학교는 훗날 인류에게 어떠한 변화가 찾아온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마지막 양심으로 남을 사제를 양성하는 거룩한 터전이다. 이곳에 사는 신학생들은 영원한 ‘생명의 빛’을 머금은 씨앗이다. 성소에 부름 받아 매일 반복되는 묵상과 기도로 하루를 살고, 자신을 알고 그 분과 하나 되기 위해 나아가는 길은 고행의 채찍이 연속이지만 그들의 얼굴은 마냥 맑고 밝다.
나는 그들을 흙으로 빚는다. 내가 빚는 호롱불은 신학생들을 상징한다. 모양 하나하나가 각기 다르다. 신학생 모두가 저마다의 모습을 지녔고, 다른 웃음을 웃고 다른 생각과 다른 말투를 지녔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인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들은 하나로 빛난다. 마치도 선택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며, 판단할 수 있는 것 또한 나의 능력이 아니란 것을 이미 깨달은 성인의 삶을 누리고 있는 듯하다. 하느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연습을 하고 있는 그들을 나는 ‘갓등의 빛’이라 부른다.
사람의 빛은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를 발하는 것이다. 빛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무상의 사랑이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언젠가 축제 때 가 본 신학교의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도 그 고요함 속에서, 세속과의 단절이라는 고행의 길을 걸으며 밝게 웃음 짓는 생명의 빛이 있어 어둠 속에 숨지지 않는 우리 삶이 허락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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