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 일은 정말이지 내가 너무나도 하기 싫어했던 일이었는데!’ 하면서도, 지금까지 그 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때 산수 공부가 그렇게도 싫었는데 지금은 수학 선생님이 되어 있거나, 어릴 때 피만 보면 기절을 하던 사람이 외과 의사가 되는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와 유사한 경우로 내 친구 중에도 어릴 때 마음이 약하고 겁이 많아서 툭하면 눈물부터 흘리던 녀석이 지금은 강력계 형사가 되어 있고, 사춘기 시절 정말 사고뭉치였던 친구가 지금은 상담 전문가가 된 경우도 그러합니다.
주변에서도 가끔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말을 듣곤 합니다. ‘신부님, 사실 어릴 때 제 꿈은 이게 아니었어요. 그리고 지금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으리라 상상조차 안 했죠. 원래는 다른 일이 더 하고 싶었는데! 아마도 어릴 때 꿈을 지금까지 하고 있었다면 그 일도 잘 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하필이면 예전에 그토록 하기 싫어하는 일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 일이 너무 하기 싫어서 빨리 잘 끝내버리려다 보니, 요령이 생기고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전문가가 되어 버린 것 같아요. 암튼 내 인생,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며칠 전에도 그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수도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번역 관련 전문가 모임이 있습니다. 그날도 그분들과 모임 중에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제 인생,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저는 역사 공부를 무척 싫어했어요. 특히 숫자에 약해서 년도를 외우거나, 혹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전후 맥락을 살피는 것은 짜증날 정도로 피하고 싶었지요. 그런데 지금 역사공부하고 있으니. 간혹 내가 왜 이 공부를 하는지 모를 때가 있어요. 하지만 하느님만은 다 아실 것 같아요. 그래서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께 꼭 묻고 싶어요.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러 힘든 역사 공부를 시키셨는지를!”
그러자 함께 차를 마시던 다른 번역가 선생님이,
“참 이상하네. 신부님과 비슷한 말을 저는 어제도 들었어요. 어젯밤에 큰언니가 무슨 일 때문에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리고 이러저러한 말끝에, ‘그런데 지금은 너 뭐하고 있니?’ 하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나의 일상을 잘 아는 언니라, ‘언니도 알잖아, 얼마나 힘들고 지겨운 번역 작업을 하고 있는지!’ 그러자 언니가 하는 말이, ‘○○야, 지금 네가 하는 일이 하기 싫은 일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래도 그 일을 지금 네가 하고 있다면 그건 분명 하느님이 너에게 시키신 일이야. 그 점 꼭, 명심하렴.’ 그런데 그 말이 내 마음속에 작은 울림으로 남아 있어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이라!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어요.”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 하고 싶은 일보다, 때로는 하느님이 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 보다, 하느님이 먼저 나에게 바라시는 일이 있다면, 하느님은 분명 하기 싫은 일일지라도, 섭리 안에서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것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 구분하느니,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의탁하는 것이 더 속 편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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