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깊을수록 ‘영광은 빛이 되어’는 ‘순교자들의 삶을 신자들에게 소개’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성당공연용 창작 음악극으로 복녀 이성례 마리아가 그 주인공이다.
“성지순례를 가서 성지의 역사나 순교자들의 정신을 되새기기보다는 마치 야유회 같은 분위기”이라며 “순교자들의 정신, 순교자 개인의 삶을 느끼기도 쉽지 않고 봉사자의 해설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것이 늘 불만이었다”는 것이 제작팀장의 설명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 했던가. 검증된 대본과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순교자 한 분, 한 분 모두에게 새 숨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로 작품을 제작했다. 장르도, 소재도, 기획운영방식도 대중적이거나 상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가톨릭 신자들의 공연이다.
자식 때문에 한때 천주를 등졌던 여섯 아이의 어머니 이성례. 그러나 자신에게 허락된 자녀들조차 하느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다시 천주께 돌아온 위대한 신앙인 이성례의 처절한 이야기가 이 작품에 담겨 있다.
세살박이 막내아들을 안고 부르는 아름다운 자장가에 이어, 아이의 죽음 앞에서 부르짖는 노래가 처연한데 포도청 형장에서 종사관이 부르는 박해 장면의 노랫말이 흥미롭다. “저 여인이 무슨 잘못이랴, 천주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 걱정이요, 어서 빨리 서양무당을 잡아들여 죄 없는 백성들이 사학에 물들어 고통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가상인물인 이 젊은 무관은 “우리가 빨리 움직여야 한 명의 백성이라도 고초를 겪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오히려 박해의 집행자가 된다.
창작 음악극인 만큼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캄캄한 상태에서 진행됐다. 청각만을 열어두고 굳이 시각을 차단한 이유에 대해 “십자가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연출 겸 기획 정준구의 해명이다. 공연양식으로 ‘안 보여주기’를 결정한 것은 상당히 유감이다. 연주자들의 몸짓과 시선과 노래하는 모습이 십자가의 의미를 가리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흐름을 만들고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힘을 가지는 문화상품. 가톨릭에도 그런 것이 있을까? 있다. 무궁무진하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가톨릭 문화콘텐츠, 순교영성에서 답을 찾자’ 얼마 전 ‘가톨릭신문’의 헤드라인이다. 순교영성, 가톨릭 문화상품의 핫 콘텐츠이다. “연기자, 제작자, 성직자와 수도자가 만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법도 이미 나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왜 순교자들의 열정과 사랑과 눈물과 땀이 비신자는커녕 신자들의 가슴도 들쑤셔놓지 못하고 있을까.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교습용’이라는 순교극의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 순교극을 만들고 공연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며 언론과 방송 매체들은 공연 공급자와 공연 수혜자의 다리역할에 활짝 문을 열어야 한다.
핫한 가톨릭 문화상품들이 이미 판매대에 올라 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극작가이자 배우로서 연극 ‘꽃상여’ ‘안녕 모스크바’ ‘수전노’ ‘유리동물원’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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