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아 집안 청소를 하면서 옷장 정리를 했습니다. 우연히 사관생도 시절 입었던 정복을 구석에서 발견하게 됐고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혀있던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졸업과 임관을 앞둔 2000년 3월, 졸업미사에서 제가 졸업생을 대표해 발표했던 환송식 답사였습니다. 재교생의 송사에 이은 제 답사에는 4년간의 생도생활을 마무리하는 소회와 신앙생활을 고백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하급생도 시절에는 자발적인 신앙심의 발로였다기보다는 ‘종교행사 의무 참석’이라는 지시와 고달픈 생도생활의 도피처를 이유로 수요일 저녁에 성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상급생도가 돼서는 각종 시험, 훈련, 검열 등의 핑계를 대면서 미사 참례를 빼먹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우연히 찾은 답사에는 막상 졸업을 앞두고 정든 육군사관학교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화랑대본당 신부님, 수녀님을 비롯한 모든 신자 분들께 그동안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생도 때 쓴 제 글을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고, 잠깐이나마 아련한 추억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15년이 지난 2월 12일,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성당에서 육사 71기 졸업미사가 봉헌됐습니다. 3월 중순 임관을 앞둔 자랑스러운 후배 생도들이 생도로서 드리는 마지막 미사였습니다. 미사 중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님께서는 강론에서 장교에게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우리를 위해 전부를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병사들을 사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미사 중에 이들이 주교님의 말씀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부하들을 사랑하는 군인이 되길 주님께 두 손 모아 기도드렸습니다.
합동임관식을 통해 국군 소위로 임관하는 후배 신임장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진 안보의 선봉장들은 투철한 사명감과 충정의 애국심으로 조국 수호에 헌신해 주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바랍니다. 비록 야전에서는 매주 미사에 참례하고 성당에서 기도하기가 힘들지만, 근무지에서 틈날 때마다 성경을 읽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기도와 묵상을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장교 생활 중에 겪을 수 있는 시련과 고통을 치유해주실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 의탁하면서 성실히 군 복무를 할 청년 사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들은 군 선교와 복음화의 역군들입니다. 군대는 청년사목의 중심이며, 선교의 황금어장이기 때문입니다. 신임장교 여러분, 각자의 부임지에서 아직까지도 하느님을 모르는 장병들에게 복음을 전파해 그들이 주님의 품속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주십시오. 이들이 투철한 신앙심으로 무장한다면, 싸워 이기는 하느님의 용사가 돼 세계평화와 국토방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신임장교들의 임관을 축하하며, 이들이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듬뿍 받아 국가와 군을 위해 ‘봉헌하는 삶’을 살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