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9년 첫 성가음반 ‘청소’를 발매했다. 음반을 발매하고 나서 종종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게 됐다. 물론 음반을 구매하겠다는 감사한 전화도 있었지만, 때 아닌 인생스토리를 30분씩 들어줘야 할 때도 있었다. 황당하고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꽤 중요한 작업이었다.
한 번은 한참 성당기계실에서 보일러와 씨름하고 있을 때 모르는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건너편에선 한참을 뜸들이더니 잠시 후 중년 자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연히 내 음반을 사서 듣고 음반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녀는 황당한 내 표정을 보기라도 한 듯 처음에 뜸들이더니 지나온 힘든 나날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머뭇거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녀는 장장 30분 동안 인생 대서사시를 마치 옆집 아주머니에게 이야기 하듯 쏟아냈다. 그렇게 인생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엔 내게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굴도 모르는 내게 부끄러운 자신의 삶을 털어 놓았으랴.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한참 유행하던 SNS를 통해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님으로부터 쪽지가 한 통 날아온 것,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잘 못 온 것이려니 생각하며 열어본 쪽지 안에는 놀랍게도 청소음반에 있는 ‘제4처’라는 곡에 대한 언급이었다. 제4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가시는 길에 마을 어귀에서 성모님과 만나는 장면이다. 개신교 목사님이 이것을 언급했으니, 무슨 비판을 퍼부을까 바짝 긴장하며 다음 글을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이런 노래를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전했다. 이어서 자신도 성모신심이 있지만 목사라는 위치 때문에 성도들에게 그 교리를 가르칠 수 없어서 안타깝다는 길지 않은 글을 끝으로 쪽지는 마무리 됐다. 빌라도가 군중의 폭동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진리를 말했을 것이다. 윗사람의 눈치도, 군중들의 인기도 살피지 않고 오로지 진리만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는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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