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사제 서품 군종교구 총대리 서상범 신부
“전방에 보내준 신문 덕에 선교 효과 톡톡히 봤습니다”
지면 통해 교리 등 배우며 성장
21년 6개월 군 사목 기간 동안
해외 구호품 보급·선교 등에 활용
▲ 1988년 사제품을 받은 군종교구 총대리 서상범 신부와 가톨릭신문의 인연은 깊다. 구교우 집안에서 자라 어린 시절부터 본지를 접했다는 서 신부는 가톨릭신문이 신자들 성화에 기여하는 매체가 되기를 당부했다.
군종교구 총대리 서상범 신부는 지난 1988년에 사제로 서품된 이른바 ‘88 올림픽 사제’(?)다. 3대째 내려오는 구교우 집안 출신이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가톨릭신문을 접할 수 있었다.
외출·외박도 없었던 서울 소신학교 시절에는 주일마다 가톨릭신문을 펴놓고 읽곤 했다. 당시에는 교회 간행물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터라, 서 신부는 본지를 통해 교회사, 교리, 전례용어 등에 자연스럽게 젖어들 수 있었다.
“책상에서 가톨릭신문을 보기도 했지만, 화장실에서도 봤습니다.(웃음)”
군종사관후보생 49기로 지난 1991년 7월 입대한 서 신부는 21년 6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대령으로 전역했다.
그는 특히 지난 1999년 10월 동티모르에 파견됐던 상록수부대 1진의 군종 장교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철모를 쓰고 방탄조끼를 입고 파병됐지만, 3개월 후 사태가 진정돼 유엔평화유지군 체제로 전환됐습니다. 현지인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가운데 현지 학생들 4000여 명의 학업을 계속 이어가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신문에 도움을 청했습니다.(본지 1999년 10월 31일자, 제2174호)”
결과는 놀라웠다. 도움을 호소한 서 신부의 소식이 본지를 통해 알려지자 옷·신발·영양제·분유·비누·학용품 등 구호품들이 줄지어 도착했다. 현지인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동티모르 신자들도 한국교회의 기도와 사랑에 감격했다.
서 신부는 즉시 가톨릭신문을 통해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본지 1999년 12월 26일자, 제2182호).
서 신부는 군 복음화에 가톨릭신문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군 사목을 하면서 가톨릭신문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종교활동이 어려운 전방부대에 가톨릭신문을 보내준 고마운 분들 덕분에 병사들이 교회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죠. 비신자 병사들에게는 선교 효과도 있었고요.”
‘젊은이는 곧 교회의 미래’라는 굳은 신념을 지닌 서 신부는 군 장병들에 대한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군종교구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함께 도와줘야 ‘선교의 황금어장’이라 불리는 군 사목에 힘이 실리게 됩니다. 가톨릭신문이 군 사목에 대한 소식을 풍부하게 다뤄주고 있어 감사하죠. 군에 종사하는 신자들에게도 큰 활력이 됩니다.”
군 입대를 앞둔 부모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있는 서 신부는 군 복음화 소식을 교회 내에서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 아들이 입대하면 부모는 군 복음화에 관심을 둡니다. 하지만 아들이 제대하면 군 복음화에 대한 관심이 식어버리죠. 지속적으로 군 복음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주는 일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교회매체가 이 역할을 잘 해주면 좋겠습니다.”
본지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에 늘 동참한다는 서 신부는 성금 전달 소식을 볼 때마다 “교회가 살아있고, 사랑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신문 창간 88주년을 축하하며 교회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앞으로 100주년, 200주년 될 때까지 한국교회의 산 증인이 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신자들의 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고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신자 재교육적인 역할을 전략적으로 고려하는 가톨릭신문이 되길 바랍니다.” <김근영 기자>
■ 1988년 첫 서원 한국 마리아수녀회 대표 정말지 수녀
“책 한 권 없는 오지서 읽은 기억 ‘새록’
교회 뉴스·미담 통해 용기 얻었죠”
필리핀·멕시코 등에 파견… 19년 선교
세계 곳곳서 본지 통해 한국교회 만나
“다양한 기사·독자 참여로 발전해 가길”
▲ 1988년 첫 서원을 한 한국 마리아수녀회 대표 정말지 수녀. 정 수녀는 가톨릭신문을 “신자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통 도구”라고 평가했다.
한국 마리아수녀회 대표를 맡고 있는 정말지 수녀에게 88이란 숫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정 수녀는 1988년 수녀원에서 첫 서원을 했다.
그 후 바로 선교지에 파견돼 필리핀과 멕시코 등지에서 19년 동안 소임을 펼쳤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너무나 친근하게 교회 소식을 전해 주고 있는 가톨릭신문이 어느 새 여든여덟 돌을 맞았다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 수녀는 “영적 독서할 여유도, 책도 없는 선교지에 유일하게 도착하던 가톨릭신문을 통해 교회 소식과 아름다운 사연들을 읽었을 때의 감회가 새롭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찾고 있는 우리들에게 빛이 되는 신문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수녀는 개인적으로도 가톨릭신문과 인연이 적지 않다. 지난 2006년, 가톨릭신문사가 제정한 한국가톨릭문학상 제11회 아동문학부문 수상작으로 정두리 시인과 함께 발간한 「찰코의 붉은 지붕」이 선정되기도 했던 것. 「찰코의 붉은 지붕」은 정두리 시인의 시와 정말지 수녀의 그림을 엮은 시화집으로 멕시코의 꽃과 풍경, 가난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고운 소녀들의 그리움과 사랑, 소중한 꿈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톨릭신문사는 마리아수녀회 공동체의 역사와 함께 해왔습니다. 1964년 마리아수녀회가 부산에서 가경자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에 의해 설립된 이후, 수많은 성소 지원자들이 가톨릭신문에 나온 기사와 지원자 모집 광고 등을 보고 수녀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바로 그 수도자들이 입회해서 50년 세월동안 가난한 아이들의 엄마요 수도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 수녀는 “수녀회의 굵직하고 역사적인 일들은 늘 가톨릭신문에서 실어 주셔서, 수녀회의 공식 일지처럼 보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문에 실린 소식들을 거의 다 읽으려고 하고, ‘세상살이 신앙살이’ 등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과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읽는다”고 털어놓은 정 수녀는 “특히 가톨릭신문이 근래에 들어서 다양하고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면서 보기 좋게 편집 되어 있어서 정말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가톨릭신자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통 도구로 성장한 가톨릭신문이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기사와 독자들의 다양한 참여를 유도하며 발전하길 기도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도경 기자 >
■ 가톨릭신문 청년 애독자 1988년생 박경호씨
매주 만나는 오랜 친구같은 존재…
느슨해진 신앙 다잡게 하는 소중한 매체
“군 복무 시절부터 7년째 애독 중”
전국 교구 활동상 한 눈에 볼 수 있어
▲ 군 복무 중 처음으로 가톨릭신문을 알게 돼 7년째 신문을 애독하고 있는 1988년생 청년 박경호(다니엘)씨.
박씨가 가톨릭신문의 독자가 된 것은 벌써 7년째다. 제법 장기 독자에 속한다. 그가 처음 가톨릭신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8년 10월 공군에 입대해 진주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신병 훈련을 받을 때였다. 모태 신앙으로 입대 전 복사를 서고 학생회 활동에 열심했던 그였지만 힘든 군대생활 중에 신앙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감사보다는 고난과 분노, 고통이 가득한 나날이었습니다. 훈련소 성당에 처음 가던 날 성당 입구에 놓여진 가톨릭신문을 본 순간 ‘가톨릭’이라는 제호에 이끌려 무조건 집어들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신앙인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부여했다. 입대 후 시나브로 어두워졌던 모습에서 밝고 긍정적인 신앙인으로 돌아가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의 기고문을 읽으며 힘든 상황일수록 감사하고 기도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반성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난의 시기였던 훈련소 생활을 이겨낼 용기를 가톨릭신문에서 얻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가톨릭신문을 보면서 전국 16개 교구의 활동상을 알게 돼 가톨릭교회를 보다 넓은 시야로 보게 된 것도 제게는 큰 소득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소속 본당과 교구 외에는 교회 소식을 거의 몰랐거든요.”
2010년 12월, 26개월 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 후 인천교구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가톨릭신문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이후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교회 소식이 궁금할 때마다 가톨릭신문을 찾았다. 대다수 청년들이 그렇듯이 종이신문보다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가톨릭신문을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가톨릭신문의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을 울리는 큰 감동을 받을 때면 가톨릭신문에 참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교구청에서 근무하게 됐고 자연스레 가톨릭신문은 매주 빠짐없이 만나는 오랜 친구 같은 존재로 자리잡았다.
제일 관심 있게 보는 지면은 군복음화면이다. 현역 군인 시절 군종교구 신자로 하느님 사랑을 더없이 풍성하게 느껴서다. 제대한 지 4년 3개월이 지난 지금도 군종교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사에 제일 먼저 눈이 간다. 군종교구 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군복을 입고 있던 때의 뜨거웠던 신앙을 떠올리고 혹시나 느슨해졌을지 모르는 오늘의 신앙을 다시 다지곤 한다.
가톨릭신문에 아쉬운 점도 있다. 청년 독자다운 지적이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려면 가톨릭신문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되는데 모바일 지원이 되지 않아 불편함이 있습니다. 바라는 것은, 가톨릭신문에 어플리케이션이 있다면 혹은 홈페이지가 모바일 지원이 됐으면 하는 것이죠.”
또 하나, 청년 신자들의 신앙체험을 기고문 형식으로 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털어놓았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