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주님의 제자 토마스입니다. 시공을 넘어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주님의 빛과 은총이 여러분 마음 안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나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은총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은총이 없었다면 나는 끝없는 좌절과 절망 속에 갇혀서 일생을 보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 삶도 새롭게 해주시기를 기원하면서 그분과의 ‘잊을 수 없는 만남’ 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요한복음 20장을 통해 알고 있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스승께서 십자가에서 무참하게 돌아가신 그 끔찍한 일이 있고서 사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안식일 다음 날이었는데, 새벽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스승의 무덤에 가보았답니다. 아마도 스승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고 아침 일찍 서둘러 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시신이 없어졌더랍니다. 몹시 당황한 마리아는 이 사실을 급히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렸고, 그들이 직접 무덤까지 와 보았지만 시신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고 있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그 날 저녁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한곳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모임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동료들은 스승의 부활 소식을 듣고 함께 모이기는 했지만, 유다인들이 쫓아와서 잡아갈까 두려워 문을 꼭 잠근 채 숨죽이고 있었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어둠을 헤쳐 버리는 빛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스승이 체포되실 때 혼비백산해서 그분을 홀로 두고 도망쳐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말할 수 없이 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괴로워하고 있던 동료들은 주님을 뵙고 그분 말씀을 듣는 순간 무거운 돌덩어리 같던 죄책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음속에는 기쁨과 평화가 가득 찼다고 합니다. 그들은 두문불출하고 있던 나를 찾아와 들뜬 모습으로 “우리는 주님을 뵈었어”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심경이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믿고 싶었지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때 스승에게 남다른 신뢰심과 충성심을 지녔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내 동료 요한이 쓴 복음서 11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스승님은 친구 라자로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고 유다 땅으로 가시려 했는데, 거기에는 그분을 증오하고 해치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스승을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비장한 각오로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요? 바로 내가 그랬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루카 24,21)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따랐는데, 너무도 무력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시자 낙담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겠더군요. 하느님도 믿기지 않았고, 모든 것을 냉소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뵈었다는 동료들의 말도 다 헛소리 같아서 “스승의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보고 만지기 전까지는 못 믿겠다”고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여드레 뒤에 동료들이 또 한자리에 모인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은 그들뿐이라는 생각에서 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원하던 대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내 가슴이 벅차올라 나도 모르게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분은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지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은 크게 낙담하고 상심한 나를 남다른 사랑으로 대해주셨습니다. 보고 만지기 전에는 못 믿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나를 친히 찾아주시어 다시 믿게 해주셨습니다. 동시에 내 믿음이 한층 더 굳건해지도록,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분의 엄청난 사랑을 체험한 뒤로, 나는 주님을 전하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고난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나처럼 실망과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적이 있었나요? 삶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너무 원통한 일을 당하면, 잔뜩 기대를 걸었던 일이 깨지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그렇게 되기 십상입니다. 그럴 때는 ‘하느님이 정말 계신가?’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아무리 어둡고 힘들더라도 주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마세요. 그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설사 그분의 손길을 느낄 수 없다고 해도 그분께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정말 선하고 전능하신 분인지, 계시기나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 때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적에도 사랑을 믿게 하소서. 하느님이 보이지 않을 적에도 하느님을 믿게 하소서”.
분명히 주님은 우리가 절망과 좌절을 극복하도록 당신 은총으로 도와주십니다. 그 은총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기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은 마음을 크게 다치면 다른 이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은둔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황야의 외로운 코뿔소’처럼 자기 폐쇄 속에 머문다면 주님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뵙게 된 것은 다른 사도들과 다시 함께하였을 때였습니다. 비록 내가 동료들의 말을 미심쩍어했지만 그들과 함께하였고, 바로 그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신앙의 동료들, 곧 교회 공동체와 함께할 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는 예수님 말씀대로 교회 안에 주님이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교회 안에서 선포되는 성경 말씀을 통해 말씀을 건네시고,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들을 통해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또한 하느님 안에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진 바를 서로 나누는 공동체(사도 4,32-35)를 통해 사랑의 주님으로 다가오십니다. 이런 주님께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간다면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우리에게 선사될 것입니다. 그 만남으로 여러분 각자가 굳센 믿음과 희망,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하는 누룩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한국의 신자 여러분,
늘 주님과 함께하면서 불화와 반목의 세상에서 평화의 사도가 되십시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께 들었던 그 은총의 말씀으로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손희송 신부는
1986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됐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용산본당 주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교구 사목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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