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마을 ‘화목캔들’ 작업장의 하루는 촛불을 켜는 일로 시작한다. 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직원들이 묵주를 꺼내든다. 매일 다른 지향으로 기도하지만 늘 빠지지 않는 지향이 있다. 초를 사용하는 이들을 위한 지향이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지적장애인 김 베드로(40)씨는 “밝게 켜진 초 앞에서 기도하면 마음도 밝아지는 기분”이라며 “초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소망이 이뤄지길 매일 성모님께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 모여 앉은 11명의 직원들은 성인 지적장애인들로 ‘화목캔들’ 사업을 통해 일하고 있다. ‘화목캔들’은 지적장애인의 경제활동을 위해 친환경 초를 생산·판매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4월 교구와 ㈜니콜라스가 협약하면서 시작돼 현재 교구 내 벼리마을을 비롯해 해피해누리작업장, 라파엘직업재활센터, 다니엘의 집 등 4곳에서 진행 중이다.
지적장애인은 그 정도에 관계없이 직업분류에서는 중증 장애인에 포함된다. 그만큼 사회에 진출하는 장벽도 높아 취업 의지가 있어도 취직하기가 어렵다.
이런 장애인들이 취직해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 보호작업장이다. 벼리마을에는 이들 외에도 70여 명의 장애인들이 빵, 쿠키, 떡 등을 생산하고 있다.
벼리마을의 근로장애인 중에서도 화목캔들 작업장의 장애인들은 훈련생이다. 보호작업장은 장애인을 고용하기도 하지만, 아직 직업능력이 근로에는 못 미치는 장애인을 훈련시키기도 한다. 훈련생들은 이곳에서 생산 활동과 더불어 사회적응을 위한 다양한 교육에 참여하며 자활을 꿈꾼다.
기도를 마치고 앞치마를 둘러맸다. 이제 장애인들의 손에서 초가 부활할 시간이다.
벼리마을이 주로 생산하는 초는 봉헌초. 작은 유리컵 안에 담긴 초로 흔히 성모상 등에 기도를 봉헌하며 밝히는데 사용돼 ‘봉헌초’라고 불린다.
본당·성지 등에서 다 사용하고 남은 봉헌초는 벼리마을에서 다시 새 초로 변모한다. 작업은 다 쓴 봉헌초를 세척한 후 왁스를 녹여 새로 채워넣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 친환경 초를 만들며 자립을 꿈꾸는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직원들이 자신이 만든 초를 들어보이고 있다.
초 작업장에 파라핀을 녹일 때 나는 특유의 석유냄새가 걱정됐지만, 아무 냄새도 없었다. 벼리마을이 생산하는 초는 100% 팜왁스(Palm Wax), 즉 야자나무에서 나는 납(蠟)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팜왁스는 완전 연소해 그을음과 유해가스 배출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식물성 납이기에 토양에서 자연 분해돼 환경파괴의 염려도 없다. 덕분에 장애인들도 안전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다. 사용하는 이도, 만드는 이도, 자연도 안전한 친환경 초다.
팜왁스를 컵에 붓고 심지를 꽂아 굳으면 봉헌초가 완성된다. 심지나 초가 파손되거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초를 골라내는 불량검사가 이어진다. 초를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컵 표면 등에 튄 왁스를 제거하면 작업이 끝난다.
현재 생산되는 봉헌초는 월 1만5000개다. 지난해보다 월 5000개가 늘어난 수지만 장애인들의 작업능력이 빠르게 향상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지금도 꾸준히 생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벼리마을 측은 곧 수익성이 높은 향초 등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작업 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는 장애인들이 기쁜 마음으로 작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델라(29)씨는 “초를 만드는 작업이 재미있어 열심히 하게 된다”면서 “무엇보다 서로 도와주며 함께 작업하는 환경이 좋다”고 말했다.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최병근(라파엘) 부장은 “친환경 초 제작 작업은 작업에 유해요소가 없고 장애인들도 흥미를 갖는 작업”이라면서 “벼리마을은 이 사업을 통해 직업욕구를 가진 성인장애인들이 직업훈련을 하고 보호작업장이나 외부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다.
장애인들이 기쁜 마음을 담아 만든 봉헌초가 포장작업을 마쳤다. 이제 이 초들은 교구 내 본당·성지 등으로 보내진다. 부활시기, 누군가 부활의 기쁨 속에 기도하며 이 초를 봉헌할 것이다.
▲ 벼리마을 직원들이 사용한 봉헌초의 컵을 세척하고 있다.
▲ 세척한 컵에 왁스를 채우는 모습. 100% 팜왁스를 사용해 그을음과 유해가스 배출이 거의 없다.
▲ 왁스를 채운 컵에 심지를 꽂는 모습.
▲ 불량검사에 이어 마무리 작업까지 거치면 봉헌초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