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임신 중 뇌동맥 수술
퇴원 후 세례받고 새로운 삶
13권 시집, 생명과 평화 주제로
토착화된 신앙시 계속 쓰고 싶어
▲ 강은교 시인은 1945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났다.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허무집」, 「풀입」, 「빈자 일기」, 「소리집」, 「붉은 강」, 「벽 속의 편지」, 「어느 별에서의 하루」,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초록 거미의 사랑」, 「제가 떠난 후에 너를 얻었다」, 「바리연가집」 등이 있다. 산문집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무명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박두진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가톨릭문학상에 선정된 강은교(클라라·71·부산 송도본당) 시인의 「바리연가집」에 등장하는 ‘바리’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바리공주’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오구대왕이 아들을 바라며 일곱 번째 자식을 낳지만 이마저 딸이라 내다버리고 만다. 하지만 바리는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모진 고통을 감내하며 병든 아버지를 구해낸다는 스토리다.
강 시인의 첫 시집에서부터 등장해 온 ‘바리’는 그녀에게 있어서 생명과 희생의 상징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무속적인 껍데기 이면에 숨겨진 생명에 대한 부르짖음이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의 단초였다.
“30대 첫 시집을 출간할 무렵 뇌동맥에 이상이 생겨 큰 수술을 했습니다. 이때 쌍둥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생과 사를 오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저희 모녀를 살려준 분은 하느님이셨습니다.”
강 시인은 출산 후에도 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오랜 투병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를 돌볼 수 없었지만 병원에서 한 수녀가 아이를 지켜주었다. 이후 그녀에게 있어서 신앙은 삶의 주춧돌이 됐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은 모두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사춘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하느님께 대한 철없는 원망을 했었죠. 늘 제 주변에서 저를 이끄시던 하느님을 애써 외면하던 시절이었어요.”
강은교 시인은 퇴원 후 남편과 함께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김남조 시인이 대모를 섰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다던 남편과 사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살면서 버텨냈다.
강 시인은 “젊은 시절에는 대상이 분명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고 유신시대에는 남편과 함께 역사시를 쓰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열세 권의 시집 모두를 관통하는 사상은 생명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청년기의 열정과 순수함이 세월과 함께 조금씩 수그러들었다면, 지금 다시 그녀에게 펼쳐진 바람과 과제는 하느님께로 향한 사랑의 노래다.
강 시인은 “신앙이 토착화되기 위해서는 문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우리 고유의 문화가 신앙에 접목되는 방법에 있어서 물리적인 결합으로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내면에서 응답해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화학적 융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상징적 인물 ‘바리’가 가진 생명과 평화의 이미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노래를 쓰고 싶습니다.”
앞으로 그녀가 노래하는 생명과 평화의 노래가 토착화된 신앙시로 모두와 함께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도경 기자>
■ 수상작 바리연가집(강은교 지음/ 112쪽/ 8000원/ 실천문학사)
부모에게 버림받은 바리데기가 부르는 그리움의 노래
강은교(클라라) 시인의 열세 번째 시집. 시인은 이 시집에서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도처를 헤매는 바리데기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아픔과 시대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아울러 애도(哀悼)의 가장 지극한 방식은 연가(戀歌), 곧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시집 전반부는 ‘70년대’라는 동인을 함께 한 남편이자 시인인 임정남에 관한 시들로 엮였다. 아울러 시인은 언젠가 닥칠 본인의 죽음을 예감하며 스스로에게 바치는 시들도 담아냈다. 20대부터 줄곧 복용해온 알약들을 “내 평생의 연인들”이라고 부르는 시인은 고통 가운데 살아있음을 체험하는 인간의 모순적 비의를 드러낸다.
시집 후반부로 가면서 ‘바리’는 세상 모든 것을 향해 나아간다. 시인이 바리데기를 처음 호명한 것은 첫 시집 「허무집」(1971)에서 선보인 연작시 ‘비리데기(바리데기) 여행의 노래’를 통해서다. 시력 47년에 이르러 시인은 다시 바리데기를 호명하며 생사의 한계를 초극하는 연가를 부른다. 총 55편의 시들은 노래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가장 깊이 버림받은 ‘바리’의 사랑노래를 새로운 선율로 선보이고 있다. <김근영 기자>
■ 심사평 / 신경림 시인
“슬픈 삶까지 아름답게 그려낸 詩語
무가적 가락, 매력적 작품 만들어”
예심에서 올라온 후보작 가운데 처음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강은교 시인의 「바리연가집」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대로 이 시집에도 초기부터 그의 시의 바탕이 되어온 무가(바리연가) 가락의 시가 많다.
그 가락이 언어가 가진 원초적 주술성을 극대화하면서 그의 시를 한층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집은 지금까지의 시집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는 그것이 한층 진화하고 있다. 살면서 생긴 상처와 흉터가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무가적 가락이 삶의 구체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한 시대의 그의 삶, 아니 우리 모두의 삶이 바리연가를 통해 되살아오는 대목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시집 속의 시들은 슬프고 아름답다. 예컨대 ‘시, 그리고 황금빛 키스’, ‘봉투’ 그리고 ‘중병’ 같은 시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개인사와 시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슬픈 시요, ‘단어’, ‘그리운 동네’, ‘지금 내가 가진 것’, ‘둥근 지붕’ 등의 시는 그의 아프고 슬픈 삶까지도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아름다운 시들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시집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무가적 가락이라는 성격 때문에 시에 자욱하게 낀 것처럼 보이던 안개 같은 것이 말끔히 가셨다는 점이다.
이번 「바리연가집」은 비록 같은 바리연가집이기는 하나 분명 옛날과는 다른 진화한 「바리연가집」 임이 분명하다.
「바리연가집」이라는 좋은 시집을 수상작으로 얻게 되어 기쁘다.
■ 심사평 / 신달자 시인
“가톨릭정신으로 형상화한 인간 본성”
강은교 시인의 「바리연가집」이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받으며 제18회 가톨릭 문학상으로 결정되었다.
「바리연가집」은 신경림 선생님의 심사평처럼 무가적 분위기에서 인간의 본성과 상처와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노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강은교 시인의 매력은 이 무가적 샤머니즘을 넘어서서 인간의 전통적 정신요소를 가톨릭 정신으로 형상화하는 보편적 인간구원으로 끌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외롭고 구슬픈 무가는 인간의 원초적 노래이므로 그것을 모두 품어 안는 가톨릭 정신으로 가다듬는 수용의 자세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집이다.
강은교 시인에게 축하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