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과 죽음 뒤에 큰 기쁨이 있음을 알려주신 그리스도를 떠올리며, 부활을 맞는 신앙인들은 새롭게 태어난다.
올해 부활을 누구보다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는 이웃들을 만났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순같은 고된 삶, 현실은 여전히 그들을 괴롭히지만 모든 고통 속에서도 ‘기쁘다’고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는 것이 사순(四旬)이었다. 택시, 포장마차, 가구 무역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가구업마저 부도를 맞아 아들과 함께 부산 기장 앞바다에 뛰어들려 했을 때, 발달장애 1급인 그의 아들이 다급히 말했다.
“아빠, 살려주세요.”
이진섭(가브리엘·52·부산 기장본당)씨는 그때 알았다. 아들 균도(가브리엘·24)의 인생이 내 인생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 이진섭씨가 아들 균도씨와 최근 자신이 쓴 책 「우리 균도」를 들고 입을 맞추고 있다. 이진섭씨는 아들과 아직도 자주 입을 맞추며 인사한다.
사순과 부활성야
1992년, 이진섭씨는 첫 아들 균도를 얻었다. 한걸음에 달려간 병원에서 만난 아이는 울음소리가 늦었다. 태변이 호흡에 영향을 줘 무호흡증을 앓던 아이는 겸자분만을 통해 태어났고, 의사는 균도가 생존하더라도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가까스로 생명을 건진 아이는 ‘엄마, 아빠’라는 말보다 혼자 하는 옹알이를 더 좋아했다. 뒤집기 전에 앉았고, 기어 다니기 전에 일어섰다. 발달장애 판정을 받고 병원을 나선 길, 부부는 아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성당에 가면 발달장애 아들의 괴성을 막느라 힘들었지만, “저 아는 뭐 하러 성당에 왔는고”하는 한마디가 그의 냉담을 부추겼다.
균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11년, 그는 균도와 도보여행을 떠났다. 그해 3월부터 40일간 부산에서 서울까지 600㎞를 걸었다. 아들과 함께 처음 전국을 걸었던 이유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직장암에, 얼마 후 균도 엄마 박금선(가브리엘라)씨가 갑상선암에 걸렸다. 이웃 가운데 암환자가 많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살던 곳 인근 고리 원자력발전소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2012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그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한수원의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이후 네 차례를 더 걸어 3000㎞에 이르는 길을 걸을 때, 그에게는 구호가 하나 더 생겨나 있었다. ‘탈핵’.
한수원은 곧바로 항소했고 올 4월, 그는 2심을 준비하고 있다.
부활을 꿈꾸며
‘탈핵운동가’, ‘발달장애인 활동가’ 등 많은 이름이 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름은 단연 ‘균도 아빠’다. 탈핵행진을 하며 만난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에게 기꺼이 힘이 돼주었다.
“가장 절실했던 것은 관심이었던 것 같아요.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도 세상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 하느님이 주신 세상과 미래를 위해 애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걷습니다.”
“균도 누구 새끼?”하고 묻자 “아빠 새끼”하며 아들이 달려온다. “하느님이 숨을 어떻게 불어넣었어?”하고 묻자 “찰흙으로”라고 답하며 입으로 ‘후’ 부는 시늉을 한다. 서로를 이해하는 부자만이 나눌 수 있는 진한 대화다.
사순 없는 인생이 있을까. 그는 ‘지나온 사순같은 삶을 기억하기보다는 다가온 기쁜 부활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사순을 지나,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부활이라고 생각해요. 주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요즘, 저는 이제야 비로소 부활을 꿈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