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을 알리는 기쁜 외침이 울려 퍼지지만 모든 신자들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사순기간 중 결심했던 것을 실천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신자도 있고, 판공성사를 보지 못해 찝찝해하는 신자도 있다. 혹은 올해도 지난해와 같은 부활이라 생각해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신자들도 있을 것이다.
가톨릭신문에서는 부활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들을 만나 그들에게 부활이 기쁜 이유를 물어보았다.
■ 원로사목자 최재용 신부
부활 기쁨, 먼 곳에 있는 것 아니라 일상 소중함 깨닫는 데서 시작
사순절만으로 부활 의미 알기 어려워
삶 안에서 주님 느끼는 노력 필요
물질주의 속에서도 ‘방향’ 잃지 말아야
“모든 이가 함께 부활 기쁨 누리길”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된다고 깨우쳐 가는 것이 신앙생활 아닌가 싶어요.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로 직결되죠. 물질문명에 시달리면서도 우리는 꿋꿋이 나아가야 합니다.”
교구 원로사목자 최재용 신부는 사순시기에만 준비하는 것으로는 부활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한다. 부활은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생활 전체를 통해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신자들은 기복신앙에 많이 젖어 있어요. 뭔가 호재가 있길 바라죠. 부활절을 기쁘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뭔가 나에게 오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기쁘질 않죠. 그러나 악재 속에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 사람은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돼요.”
현실적인 것에만 만족하는 사람은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예전에 비해 세상은 정말로 살기 편해졌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전화로 손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길을 몰라도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면 찾아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굉장히 좋은 세상이 됐어요. 그런데 좋은 세상이 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그래, 세상은 좋아졌지만 나는 불행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죠.”
불행하고 힘들다고 느끼며 산다고 해서 행복과 평화가 없어지진 않는다.
최 신부는 이해인 수녀의 ‘행복의 얼굴’이라는 시를 읽으며 크게 공감했다고 말한다. 암투병 중에 쓴 그 시에서 “행복과 숨바꼭질 하는 설렘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 오늘도 행복합니다”는 구절이 특히 와 닿았다고 한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부활대축일을 기쁘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로 판공성사를 안 봐서라든가, 사순 계획을 지키지 못해서, 혹은 뭔가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꼽아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데 말이죠.”
물질문명의 발달은 우리 삶에서 절제를 앗아갔다. 시간이 조금 남는다 싶으면 TV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그 때문에 인간관계는 점차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최 신부는 사순시기에 바로 이 점을 깨닫고 보다 따뜻한 인간관계를 위해 노력하거나, 지치고 힘든 일상 속에서 주님의 손길을 느끼려고 노력했다면 보다 쉽게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2006년 병원에서 식도와 대장에 암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위의 위쪽과 아래쪽을 많이 잘라냈어요. 그러고 2007년이 돼서 부활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군요. 부활 축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 삶의 소중함에 대해서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최 신부는 주님의 부활이 교우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길 바란다.
“힘들 때 주님의 손길을 느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나고 보면 하느님의 손길이었구나 하고 느끼죠. 부활의 기쁨을 멀리에서 찾지 마세요.” <김진영 기자>
■ 미혼모 시설 ‘생명의 집’ 원장 차화옥 수녀
“길고 긴 진통 뒤에 오는 생명 탄생…, 사순 고통 의미 알게 됐어요”
홀로 시설 찾는 미혼모 곁에서
분만실·수술실까지 동행하며 격려
생명의 현장, 임신·출산 과정 보며
매순간 주님 응답·부활 기적 느껴
‘생명의 집’ 원장 차화옥 수녀(성빈센트드뽈자비의수녀회)는 이번 예수부활대축일에도 바쁘다. 생명의 집에 머물고 있는 미혼모가 부활을 전후로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새 생명과 함께 찾아온 부활은 차 수녀에게 기쁨 그 자체다.
생명의 집은 미혼모를 보호하고 출산을 돕는 곳이다. 특히 사회 안에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한 활동으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의 ‘생명의 신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제는 부활이라고 하면 꿈틀거리는 생명이 생각나요.”
때로는 몰래, 때로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쓴 출산인 경우가 많아 미혼모 대부분은 가족 없이 홀로 병원을 찾는다. 차 수녀는 이들이 필요로 한다면 분만실이나 수술실까지도 함께하고 있다.
산모들과 더불어 살며 배가 불러오는 과정과 출산을 지켜봐 온 차 수녀는 출산의 과정이 마치 사순과 부활처럼 느껴진다.
차 수녀는 “10시간 넘게 진통을 하는데 산모가 아픔을 이기며 힘을 줄때마다 곁에 있는 나도 같이 힘을 주게 되더라”면서 “그 고통 끝에 예쁜 아기를 보는 순간 산모도 저도 기쁨에 고통을 잊었다”고 회고하고 “그 과정에서 더욱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산모들이 ‘수녀님 저를 살려주세요!’라고 하면 저는 ‘예수님 산모를 살려주세요’하고 기도해요. 생명과 관계된 일이다보니 단 하루, 단 한 시간도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어요. 매일 매일이 기적 같아요.”
차 수녀에게 부활의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가족의 강압으로 낙태 수술대에까지 올랐다가 아기를 살리고자 도망 나와 건강한 아기를 낳은 산모, 자연분만을 원했음에도 상태 악화로 수술실까지 들어갔다가 수술 직전 자연분만한 산모 등 생명에 관한 극적인 순간에서부터, 끊임없이 도와주는 봉사자,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이 생기는 일상의 기적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집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주님을 부르고, 또 그 응답을 듣는 나날이다.
출산은 끝이 아니다 미혼모들은 출산 이후에도 또 다른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아기를 키우는 고통, 미혼모를 바라보는 주변의 왜곡된 시선, 아기가 성장하는 기쁨을 가족·친척과 나눌 수 없다는 외로움 등. 미혼모들은 날로 늘어나지만 미혼모들이 생명을 지키며 살아가기에 아직도 이 사회는 차갑고 험난하다.
그래서 생명의 집에서 출산한 미혼모들은 생명의 집을 친정처럼 여긴다. 명절이 되면 생명의 집을 찾아오고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을 SNS를 통해 차 수녀에게 보내기도 한다. 차 수녀는 “지난 설에도 19명이 생명의 집에 모여 북적거렸다”면서 “아기는 잘 크는데 정작 본인은 챙겨먹지 못해 마른 모습을 보면서 친정 엄마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심을 가지고 사랑과 지원을 주시면 미혼모들이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모두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 <이승훈 기자>
■ 선교사 김종두씨
“시한부 선고 받은 지 14년… 매일 아침 눈뜨며 감사드릴 뿐입니다”
2001년 직장암으로 첫 수술 후
임파선암·위암 등 3차례 암 극복
덤으로 사는 삶… 해외 선교에 투신
“곁에 계신 주님 느끼는 것이 부활”
“매년 부활 때마다 저는 제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지난해 부활대축일 때의 저와 올해 부활대축일의 저는 달라요. 매년 부활을 맞이하면서 하느님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는 제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아요.”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종두(스테파노·60·안양대리구 인덕원본당)씨에게 부활은 너무도 기쁜 소식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김씨는 ‘감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찬란한 태양을 볼 수 있는 것,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볼 수 있다는 것 등 모두가 감사할 일이다. 그에게 있어 하루의 시작이 바로 ‘부활’이다.
“제가 젊었을 때는 돈 버는 것, 성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그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2001년도의 일이죠. 직장암 선고를 받았거든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됐는데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말을 안 해주더라고요. 그냥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구나 하고 추측할 뿐이었죠.”
암 수술을 받은 이후 성경 필사를 시작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난 이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아직 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호스를 몇 개씩 몸에 꽂은 상태였지만 필사를 할 때 김씨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성경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을 필사하면서 느꼈어요. 죽어있는 글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을 보여준다고 확신할 수 있었죠.”
김씨의 이런 노력이 암을 이겨낼 수 있게 한 것일까. 그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나을 수 있었던 것은 소공동체의 기도의 힘 덕분이라 여기고 있다.
“제가 암 선고를 받은 그날 저녁부터 5년 간 구역반 식구들이 모여서 저를 위해 기도해줬어요. 그 기도 덕분에 제가 살아난 것이죠.”
2003년 1월 임파선암, 2012년 12월 위암, 김씨는 한 번 이겨내기도 힘든 암을 세 차례나 이겨냈다. 남들은 인생을 덤으로 살게 됐다고 말했지만 김씨는 자신에게 소명이 주어졌다고 믿고 중국과 미국 선교에 투신했다.
“2012년 12월에 위암 판정을 받고 2013년 3월에 입원을 했어요. 그 해 부활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부활이었어요. 열 번이고 천 번이고 하느님과 함께만 한다면 살아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거든요.”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김씨는 힘주어 말한다.
“매주 성당에 나와 미사에 참례하더라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언제든 냉담할 수 있고 반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얼마든 달려 갈 수 있어요. 주님을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언제나 함께 계신 주님을 깨닫기만 한다면 말이죠.”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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