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회씨、됐어!」
어둠 속으로 느닷없이 나타난 미스공이 불쑥 말했을 때 미회는 저녁 설겆이를 하던 그릇을 떨어뜨렸다. 그릇이야 모두 양재기여서 깨질 우려 따위는 없었지만.
어때 내 실력이…하는 득의에 찬 얼굴로 히죽히 웃고 있는 메기아가리가 그순간처럼 아름다와 보인 적이 없었다.
「정말이야?」
미회는 물기 묻은 손 그대로 미스공에게 와락 달겨들며 껴안았다.
「서울 갈수 있단 말이지?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신분증、군복 다 준비됐어」
「믿어지지 않아. 그래 언제 떠나는 건데?」
「내일 새벽」
미회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출구없는 지하 갱속에서 이제사 밖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미스공이 던져준 밧줄을 타고….
지금 같아선 그 밧줄의 성능이 미회의 몸무게를 능히 지탕해 줄 것인가도 미심쩍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한가닥 희망의 끄나풀은 잡은 셈이다.
피난민 식구들의 얼굴에는 희비가 교차된다. 누구 하나라도 빨리 이 지루한 피난살이를 면하게 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들이 의지하고 위로받는 두 처녀란 말인가.
「우린 언제쯤이라야 이 지긋지긋한 피난살이에서 헤어날 수 있다지? 정이 들대로 들었는데 힘없는 우리만 떼어놓고 이렇게 떠나버림 우린 어쩌누」
「그래도 갈 사람은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지. 그래야 입도 줄고」
「그나저나 대추나무 연걸리듯 한 외상값은 어떡헌다지?」
순아엄마 걱정은 태산만 같았다.
「아줌마、내가 서울가는 이유가 뭐겠어요. 난 미회처럼 서울에 집이 있는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계신것도 아니잖아요. 대장을 만나서 담판을 짓겠다구요. 어쩜 요전에도 고렇게 살짝 그냥 왔다갈수가 있느냐구요. 물론 말은 일이 바빠서 그런줄은 알아요. 하지만 여기 계신분들이 어디 생판 남들인가요? 모두가 부대원들 가족이 아니냔말예요. 내가 올라가면 꼭 잘해결 될 거예요」
순아엄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공이 한다면 무슨일이건 안되는 일이라곤 없는 것이다. 보아라. 지금 당장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서울작전지구에 내일 당장 미회까지 한강을 건너게 할 수 있는 도강증을 마련했다 하지 않은가.
미회는 그날밤 뜬눈으로 새웠다. 옆에서 미스공은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미회에게 맨처음 서울식구소식을 전해준 것은 기석오빠였다. 그는 부대의 공작 임무를 띠고 첫번째로 서울로 갔들때 미회가 그려준 약도를 찾아 초동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실망하고 돌아나오는 행길에서 마침 실명한 노모와 조무라기 아이들을 데리고 용인까지 피난을 갔다. 돌아오고 있는 미회어머니를 만난 것이다.
그것은 기연이탈 밖에없는 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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