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석이、변대장 그 두사랑이 우리집 은인이다. 그 청년들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눈앞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할머니는 그래도 표정은 전보다는 밝았다.
소식없는 미회 아버지를 그래도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미회에게 말했다.
미회가 서울집에 돌아온지도 달포쯤 되었다. 지금도 미회는 한강 초소에서 미군 헌병에게 검문을 당하던 순간을 생각하면 눈앞이 노래지곤 한다. 이 군용 지프차 뒷자리에 앉아 간이 콩알만큼 오그라들어 있는 가짜 신분증 소지자 미회의 팔다리가 파들파들 떠는 것을 보온용으로 무릎 위를 덮은 군용담요 밑으로 으스러지라고 꽉 잡아주며 검문을 하는 미군 헌병에게 활짝 애교있는 웃음과 함께
『너어스!』
하면서 바른쪽 손가락으로 V자를 지어보이자『오ㆍ케이』하고 두말없이 무사통과….
미회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온 것은 미스공이었고 군복과 교통편을 제공한 것은 미스공의 서울 애인이었다.
현재 미회네가 살고 있는 집이 바로 변대장의 어머니 집이라고 했다. 그는 기석을 통해서 미회어머니의 사정을 듣고는 관수동에서 요행히 전화를 면한 자기네 본가 열쇠를 내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청상과 수댁으로 외아들인 저를 이집에서 하숙을 치시며 키우셨지요. 지하실에는 땔감、김장김치、식량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니 마음놓고 소비하십시오』
기석에게 소개를 받은 미회어머니에게 변온정씨는 스스럼 없는 십년지기처럼 그렇게 말하더라고 미회어머니는 딸과 딸의 친구인 미스공에게 말했다.
『너희가 오기 전에는 자주 들러서 저녁도 같이 먹곤했는데 요즘은 통발걸음이 끊겼구나』
세상물정이라곤 생판 모르던 요조숙녀도 이제는 동대문 시장에서 약ㆍ헌책 등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고 그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어머니는 아직도 변온정씨가 미스공의 애인임을 모르는 것 같았다. 미회는 변온정씨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미회네 가족이 보는 앞에서 미스공을 만나기가 쑥스러워 그러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미스공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미스공은 생전 처음 한숨을 쉬며 먼 하늘을 바라보는 통에 미회는 깜짝 놀랐다.
『왜 그래? 아직도 못만났어?』 미회는 이번에는 자기가 미스공을 위해서 무슨일이라도 발벗고 나설 때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구 외상값 때문이라고 꼭 만나야겠는데 무엇이 그리도 수줍은지 통만나 주질 않지 뭐야 미회씨、나 좀 도와줄래?』
『물론이지、어쩌면 좋겠어?』
미스공이 미회를 잠시 어리둥절하게 했다.
『미회씬、미술학도니까 그림 잘 그리지? 내 장점이라면 매끈한 육체미밖엔없고.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내가 한번 승부를 보긴 봐야겠어. 목석같은 사나이 한번 녹여놓고 봐야지. 미회씨、내 누드좀 그려줘』
미스공은 거침없이 걸치고 있는 옷을 훌훌 벗어던졌다. 놀라 말도 안나오는 미회 눈 앞에 있는 미스공의 몸매는 과연 자랑할만큼 아름다왔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