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미회의 위기를 미스공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미회는 자기가 여태 이렇게 살고 있는 않으리라는 점을 몰라보게 변한 공약옥 앞에서 다시금 확인 하는 순간이었다.
그날밤 미회네 할머니와 어머니의 호의로 저녁밤까지 푸짐히 대접을 받고도 그 젊은 중위는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미회를 만나는 순간 내가 찾던 여자는 바로 이소녀다! 하는 계시를 받았노라 떠벌리기 시작한 것이라.
『저는 비록 한번 결혼에는 실패한 몸이지만 따지고보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그 여자를 마다하게 된 동기도 여기 이렇게 만나게 된 미회씨 같은 소녀가 반드시 어딘가에 살아 있으리라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그여자는 현재 저와 헤어져서 미국에 유학을 가고 없읍니만 그따위 여자에겐 눈꼽만큼의 미련조차 없는 접니다. 』나중에는 그런 허황한 소리까지 심각한 낯빛으로 주워섬기더니 시종여일하게 경멸, 혐오, 냉담의 노골적 표정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그를 손님처럼 대우한 할머니 어머니마저 싸잡아 날카로운 눈공격을 퍼붓는 미회에게 그는 차고 있던 권총을 정면으로 들이댄 것이다.
『비록 오늘낮에 만난 미회씨지만 내 진심엔 한오라기의 거짓도 없소. 그걸 증명하라면 단방에 내 목숨을 끊을 수도 있소!』
그의 이글이글 불타는 괴기어린 눈빛을 보자 미회는 소리도 못내고 아래윗니가 마주 치도록 무섭게 떨기만 했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미회와 진배없이 속수무책일뿐 총알이 장전된 권총만 어떻게든 치우게 해야겠다는 한생각 뿐이었다.
그때 미스공이 돌아왔다.
『할머니 어머니 저 취직했어요. 다방레지로요』
그녀는 정도 이상 명랑하게 큰소리로 알리고는 재빨리 미회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빨리 내게 맡기고 관훈동으로 피해』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권총을 뻗쳐는 초면의 사나이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 미회 언니여요. 우리미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예요. 동생이 무슨 잘못을 저질렸는지는 몰라도 워낙 빳빳한 애라서 그러는데 뭘 그러세요. 미회 너 조앞 구멍가게에 가서 술이랑 뭐 그런거 좀 사와. 나 오늘 모처럼 취직도 했으니 이분이랑 축하파티라도 벌여야겠다』
미회는 재빨리 빠져나가 관훈동으로 갔다. 이튼날 미회를 데리러 어머니가 관훈동으로 왔다. 미회가 나간 다음 미스공은 행패 부리는 낯선 사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 후 여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잘못 되지나 말아야 할텐데』조바심이 나도록 궁금하던 미스공에게서 그와 함께 살게되었다는 유치한 필체의 편지가 날라온 것은 그후 3개월쯤 지나서였다.
할머니는 돌아가신지가 벌써 30년쯤 되었지만 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거셨다고 그녀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자 핏발 선 큰눈엔 담박 눈물이 어린다.
『내 평생 소원이 그 어른 한번 만나뵙는 거였는데…』
미회는 그동안 어디서 무얼하며 살았느냐고 감히 묻지도 미회는 그녀의 매디진 두 손을 맞잡은 자신의 흰 손이 그순간처럼 부끄러울 때가 없었다.
<끝>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