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인가 49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이북에 있던 덕원신학교의 소신학생이었던 나는 방학동안에 최마티아신부님과 함께 청천강 하구에 있는 작은 외딴 섬인 신미도 공소에 복사겸 따라갔던 일이 있었다. 청천강 하구에서 작은 돛단배를 얻어타고 여러 다른 사람들과 같이 떠났는데 보안서원도 끼어있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대륙에서는 중공군과 장개석의 국부군이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고있던 때였다. 청천강 연안에서 중국 국적의 어선을 발견한 보안서원의 명령에 의해 하루종일 2배로 추적하여 저녁 늦게 결국 그 중국배를 나포하여 신미도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떨어져 어두워졌고 또 썰물때가 되어 거의 5리나되는 질퍽한 갯펄을 걸어서 뭍에 오를수 밖에 없었다. 하루종일 굶은데다가 5리를 갯펄에서 헤매고나니 지칠대로 지쳐 곧 쓰러질것만 같았으나 그때까지 신자들이 돌아가지 않고 부둣가에 모여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때 배고픔도 피곤함도 일시에 사라져버렸던 기억이 새롭다. 신미도는 바로 최신부님의 고향이었으며 양친을 비롯한 가족들이 살고 계셨으니 최신부님의 첫방문이 얼마나 극적이었겠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을 줄 안다.
오늘、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그것도 미국까지 와서 내자신이 공소의 한 신자가 되어 두달에 한번오시는 신부님을 목타게 기다리게 될줄이야 짐작도 하지 못했었다.
몇년전에 우주 왕복선 콜럼비아호를 한참 실험하고 있을때 現제주교구장인 김창렬주교님께서 한번 이곳을 찾아주셨을뿐 여러 신부님들이 미국을 다녀가시면서 들리시겠다고 연락만 주시고는 큰곳、 신자들이 많은곳을 들리시느라고 바쁘셔서 번번이 그냥 돌아가 버리시곤했다. 이곳이 공소중에서도 가장 먼 공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해방직후 만주에서 돌아온 나는 전에 다니던 평양 사범 부속국민학교(5학년)에 복학할 수 있었고 곧 우리말로 처음으로 학예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는「시계싸움」이라는 연극을 하게되었다. 시계의 각부분이 각각 자기가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서로 싸움하다가 결국 각자의 역할을 포기하게 되니 시계는 고장이나서 주인부부가 이 시계는 고장이나서 아무짝에도 쓸수없으니 내다 버려야겠다고 하는 줄거리로 기억된다. 이때 나는 태엽의 역할을 맡았었다. 시계에는 시간과 분을 가리키며 겉에서도 보이는 바늘도 중요하지만 속에 감추어져 비록 보이지는 않으나 태엽도 중요하고 또 톱니바퀴、 보잘것 없는 작은 나사못 하나에 이르기까지 각각 다자기가 맡은바가 따로있고 또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수있는 좋은 역극이었던 것으로 아직도 머리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들이 다같이 협력하여 맡은바 자기일을 제대로 해나갈때 비로소 시계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이곳에서 교리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5명의 영세자를 내게되었을때 아직도 주님께서는나를 아주 내다버리지 않으시고 후일에 보잘것없는 작은일에나마 쓰실려고 여태 보존하고 계신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되었다.
성세예절과 미사가 끝난 후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때 또 나의 마음은 과거로 돌아가 1952년 6ㆍ25전란중의 부산영도의 청학동성당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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