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5월 13일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은 회개와 기도, 특히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당부하시며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공산주의의 창궐로 인한 냉전의 확대, 그리고 교황님의 저격사건을 예언하셨다. 지난 20세기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성모님의 예언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목격하고 체험했다. 특별히 1980년대 말 소련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성모님의 도움으로 하루빨리 평화통일을 이루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탄생한 곳이 바로 남양성모성지이다.
1991년 10월 7일, 묵주기도의 동정마리아 기념일에 남양 순교지를 성모님께 봉헌해 드리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는 한국천주교회의 성모성지로 선포했다. 남양성모성지의 봉헌과 선포는 곧바로 평화를 위한 24시간 묵주기도 고리운동으로 이어졌고, 이 운동을 통해 평화를 위한 묵주기도가 끊임없이 봉헌되어 왔다. 남양성모성지의 봉헌 20주년이었던 2011년, 성모님은 얼마 남지 않은 파티마 성모님의 발현 100주년을 더 많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준비하도록 일깨워주셨다.
그해 여름, 메주고리예에 가서 세계 각국에서 모여온 청소년들에게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온 나는 얼마 후 ‘평화통일을 위한 묵주기도 100단 바치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묵주기도 100단을 바치면서 느끼는 것은 기도를 바칠수록 북한에서 날마다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형제자매들, 헐벗고 굶주린 어린이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탈북자들의 고통이 더욱 예민하게 느껴지며 마음이 아프고, 그들에게 평화를 선물하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들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불쌍히 여기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통일이 올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모두가 남양에 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미사 때마다 이 기도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양에 오기 힘든 사람들은 각자 사는 곳에서라도 매주 토요일 오후는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5단이든 10단이든 함께 묵주기도를 바쳐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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