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당시 ‘청소’라는 1집 성가음반을 내고 활동하던 중 평화방송 TV에 종종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날 본당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한 자매님이 TV에서 잘 봤다면 인사를 건네 오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함께 TV를 보다가 다소 슬픈 표정으로 “엄마, 내가 관리장님 옷 한 벌 사드려야겠어” 하더란다. 같은 옷을 두 번이나 입고 TV에 나온 내 모습이 그 아이 눈에는 몹시 안타까워 보였던 모양이다. 평소 옷에는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인데, 그 사건을 계기로 공연 다닐 때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됐다.
‘성가공연에서 사람들은 과연 찬양사도의 어떤 모습에서 하느님을 체험할까?’ 이따금씩 생각해 보곤 한다. 거룩하게 차려입은 외모일까? 마치 하늘에 닿을 듯한 호소력 있는 가창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풍기는 영성 때문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과연 나는 ‘자격이 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그래서 실제로 이미 잡힌 일정을 취소하기 위해 여러 번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한 적도 있다. 봉사는, 혹은 하느님을 위한 일은 정말 자격이 갖추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종종 공동체 안에서 내가 하는 봉사가 하찮거나 의미 없게 느껴져 의기소침 해질 때가 있다. 반대로 마치 봉사자 직함이 벼슬인양 다른 봉사자를 무시하는 거만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과연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높은 봉사, 낮은 봉사 혹은 가치 있는 봉사, 가치 없는 봉사가 있을까?
완전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증언할 수 있다면, 아무도 그분의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 어느 성인의 말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는 부족한 가운데서도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성인은 하느님의 자비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우쳤으리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언제나 토마스 같은 나약한 믿음이어도 베드로와 같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믿음 일지라도 ‘당신을 사랑하는지’만 물으신다. 오늘 하루 자연을 통해, 그리고 이웃과 모든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에 푹 잠기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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