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규야! 언제 돌아올 거니.”
오늘도 유가족들은 아들 딸들이 사라져버린 그 바다 앞에 선다. 바라보면 볼수록 눈에는 눈물만 차오른다.
참사 당시 여섯 살이던 권혁규 군은 배 안에 물이 차오르자 동생 지연 양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입혔다. 그러고선 힘껏 밀어 올려 탈출시켰다. 다시는 엄마 품으로 돌아올 수 없으리란 걸 알았을까…. 혁규 군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Pray For South Korea’(한국을 위해 기도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인터넷과 SNS 등을 타고 전 세계에 퍼졌다.
지난 1년, 300여 생명과 함께 가라앉아버린 세월호는 얼마나 녹이 슬었을까, 우리 마음엔 또 얼마나 많은 녹이 끼었을까.
진도 팽목항 세월호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는 아직도 영정을 대신하고 있는 글들이 남아있다. 9명의 실종자.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애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성 목요일, 1년 전 팽목항을 기억하다
성 목요일, 다시 찾은 팽목항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슬픔에 잠겨있었다. 아직도 매서운 바람이 노란 리본들을 거칠게 흔들어댔다. 애처로운 사연을 간직한 현수막들은 비에 젖었는지 눈물에 젖었는지 알 수 없었다. 리본에 적힌 글들은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기억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가족들이 언제든 와서 의지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십시오. 교회는 위로가 필요한 분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참사 직후 부활대축일, 팽목항을 찾은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는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유가족들을 만나면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아니, 터져 나왔다. 연신 전화기를 붙들고 아이 구할 방법이 있는지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어머니, 넋 나간 표정으로 사흘 넘게 잠 한숨 못 자고 있는 아버지,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애꿎은 땅만 긁고 있는 아이, 행여나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터지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며 붉어진 두 눈으로 사고 현장을 바라보던 가족들의 모습은 여전히 뇌리에 선명하다.
성 금요일, 울부짖는 맹골수도 위에서
“저기 떠있는 부표가 침몰해 있는 세월호의 선수와 선미입니다.”
성 금요일, 세월호가 침몰해있는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를 찾았다. 기상이 좋지 않아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바다는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듯했다. 뱃멀미가 심해 속엣것을 다 게워냈다. 배 안으로 들이치는 바닷물에 젖어 추위가 엄습해왔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있을 실종자들 생각에 마음이 더 아려왔다.
“이곳이 세월호 희생자들이 가족들과 만난 첫 자리입니다.”
팽목항 한켠에 있는 천주교 천막성당. 성당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시신이 육지로 올라온 후 가족들의 확인을 받던 시신검안소가 있었던 자리에 서있다. 그때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천막 안에는 또래 친구들을 떠나보낸 학생들이 그린 세월호 포스터와 십자가의 길 그림이 아픔을 되새기게 한다.
다시 찾은 진도실내체육관. 가로수에 걸려있던 노란 리본들도 모두 사라지고, 세월호와 관련된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지만 시간 속에 잠긴 기억들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진도하면 이제 세월호가 가장 먼저 떠오르게 돼버렸네.”
팽목항을 다녀온 이들이라면 그곳을 세월호와 연결할 수 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는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가늠하기조차 힘든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너무 아프니 이제 그만 잊자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하지만 상처를 잊고 방치할 때 고름이 차고 병이 더 깊어질 수 있다. 고름은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
아픔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몸이 보내는 메시지다. 아픔을 잊기 위해 진통제를 쓸 것인지 아니면 곪은 상처를 치유해 새살이 돋게 할 것인지, 한국교회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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