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소 :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 내 매일신문 서울지사
■ 참석자 : 이석태 변호사, 이호중(사도요한·서울장위동본당) 교수
■ 진행 : 장병일 편집국장
▲ 이석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매향리 미군사격장 소음피해와 관련해 최초로 미군의 환경오염 책임을 묻는 판결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냈다. 한겨레신문 사외이사로 일했으며 2012년부터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헬렌 니어링의 저서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1993년)를 처음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 이호중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은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문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자유권 분야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 운영위원장,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학술위원장, 서강대법학연구소 인권법센터장,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사)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교회 안팎에서 인권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 위원장과 이호중 위원을 만났다. 민주화와 정의 구현에 한몫하고 있는 두사람은 세월호 관련해서도 분명한 생각을 드러냈다. 결론은 두 가지. ‘사회 부조리를 없앨 기회’ ‘더 나은 국가를 만들 시점’. 그래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규명돼야 하고 책임소재를 가린 후 용서와 화합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이석태 위원장님은 신자는 아니지만 천주교와 인연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호중 교수님은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외에 다른 교회 활동도 하시는지요.
이석태 위원장(이하 이 위원장) :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인 김형태 변호사와 법무법인(덕수)에 함께 있다 보니 천주교에 접할 기회가 많습니다. 또 오래전부터 명동성당 인근에서 활동을 해오고 있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신부님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천주교가 낯설지 않습니다. 참 좋은 종교라는 인상을 갖고 있죠. 무한한 사랑과 자비의 근원 속에서 일하면 모든 일에 거리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갖고 싶은데, 하지만 특정 종교에 매이는 건 싫습니다.
이호중 위원(이하 이 위원) : 천주교 인권위 운영위원장 외엔 다른 교회 활동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의 기준을 ‘하느님 이라면…’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장 국장 :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한 소회가 궁금합니다.
이 위원장 : 솔직히 참사 1주기 시점에 세월호 특위가 어떤 모양이 될지 불확실해 송구스럽습니다. 참사가 일어난지 1년이 다되어가지만,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고 사회의 재난에 대한 근본적이고 적절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특위가 참사 1주기가 되기 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힘들 것 같습니다. 위원장으로서 위원들과 협력해 희생자와 실종자 유가족을 위로하고 빠른 시일내 진상을 규명해 안전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 위원 :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50여 분이 삭발을 했습니다. 참담한 심정입니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삭발하는 상황은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지난 1년 동안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습니다. 정부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 선체 인양이 필요합니다. 배상과 보상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는데 이것은 참사를 돈의 문제로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진실 규명부터 하고 누가, 또 정부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따지는 것이 상식입니다. 정부는 마치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장 국장 :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 우리 역사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시대에 쉽게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가 되었다는 말인 듯 합니다.
이 위원장 : 세월호 참사가 어떤 경위로 발생했고 어느 시점에 침몰했는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이 주목하는 점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배 안에 있던 승객들을 구조, 구난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언론도 오보로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참사 후 수습과정에서도 미숙한 모습과 사실관계를 오도하는 움직임들이 있었습니다. 참사는 비극적 재난인 동시에 우리 사회가 안전문제에 있어 위기에 처해 있음으로 보여주는 총체적 부조리의 상징입니다. 우리 사회의 부정과 비리가 노출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밑바닥까지 간 사건이죠. 예전의 삼풍백화점 붕괴와는 다른 형태의 사건이지만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세월호 참사가 나기까지 한국사회는 나아진 게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에 커다란 과제를 안겨준 것이죠.
이 위원 : 우리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공동체의 정의 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얘기하자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자는 겁니다. 진실 규명은 무거운 표현이긴 하지만 공동체의 정의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불행하게도 진실 규명과 정의 회복에 반대하고 훼방을 놓는 이들이 있습니다. 권력이죠. 정치 권력도 있고 기업 권력도 있습니다. 진실 규명은 권력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이라는 의미에서 세월호 특위 위원 중 한 사람으로서 막중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는데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가만있으면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권력의 부정적 측면과 야욕에 맞서 정의를 실천하고 개혁 운동에 나서야 합니다. 말로만 해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장 국장 :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이하 시행령안)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특별조사위원회의 원안을 무시하고 조직과 정원을 대폭 축소시켰다’ ‘진상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을 침해하거나 성역없는 진상 규명을 가로막을 수 있는 독소 조항도 가득하다’는 말이 들립니다.
이 위원장 : 해양수산부가 내놓은 시행령안은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크게는 세월호 특위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독립성은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며 특위의 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죠. 그러나 시행령안 대로라면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이 실권을 잡고 있습니다. 특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원활한 운영과 행정지원, 예산 집행 등에 공무원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상 규명 조사는 민간 전문가가 해야 합니다. 시행령안은 거꾸로 돼 있어요. 특위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모든 것을 관장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이것은 ‘일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한 이유는 참사에 대해 국민들이 의혹을 갖고 있고 정부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위가 구성됐습니다. 해수부는 대표적인 조사 대상인데 거꾸로 해수부 공무원들이 특위를 기획, 조정한다는 것은 모순이죠. 시행령안을 보면 진상규명소위와 안전사회소위의 규모가 축소돼 있고 주요 파트에 공무원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시행령안 대로 하면) 세월호 특위 위원들은 할 일이 없어지게 됩니다.
장 국장 : 세월호 문제는 진보나 보수, 여야간의 정쟁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 가자’라는 기본 취지가 무시되고 있습니다. 진영 논리가 개입되어 국민의 양분이 되고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특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도 시급한 것 같습니다.
이 위원장 : 우선 세월호 특위 구성에 관계되는 시행령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17명의 특위 위원들은 자신을 선출한 단위에서 독립해야 합니다. 세월호 특위라는 배에 승선했으면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일해야 합니다. 아직 특위 조직이 정립이 안 됐지만 차츰 좋아질 것입니다. 특위를 운영하면서 위원들이 서로 비판도 해야 하고 실무자들과 파견 공무원들은 행정 지원에 충실해야 합니다. 민간 전문가들은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해야죠. 유가족 지원도 과제입니다.
특위의 중립성 보장이 중요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다른 위원회들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과거의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했던 위원회들과는 달리 세월호 특위는 현 사건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독립성이 더욱 필요합니다. 과거 다른 위원회와 비교해서는 안 되죠. 특위가 국민들에게 힘을 얻고 언론에서 힘을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특위의 무기는 투명성과 객관성, 과학성입니다.
장 국장 : 이런저런 이유로 특위 활동이 중단된 것인가요?
이 위원장 : 세월호 특위의 일상 업무는 정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위원장 직책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소위원회 활동은 잠정 중단된 상태입니다. 비상 상황이죠.
장 국장 : 지난해 8월 한국을 찾아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만난 자리에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교황의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황은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지 성찰해 볼 시점입니다. 믿음을 가진 신앙인으로서 세월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이 위원 : 신앙인의 역할은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 합니다. 국민 모두가 세월호 배지를 다는 실천부터 해야죠. 배지 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은데 순수한 마음에서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실천적 목소리를 내고 서명 운동에도 참여했으면 합니다.
신앙인들이 나서야 합니다. 화합이야말로 종교의 역할이죠.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갈등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세력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신앙인들이 ‘아니다’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보다 신뢰감 있는 모습으로 역할을 해줬으면 합니다.
장 국장 :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활동으로 종교계가 부산합니다. 참사 당일(4월 16일)을 전후해 현장인 진도 팽목항을 포함한 전국에서 미사와 법회, 기도회 등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참사 1주기가 부활절과 부처님오신 날에 맞물려 있는 만큼 범종교적으로 결집해 희생자 위로와 극복·치유의 행사들을 가질 것 같습니다. 세월호 관련해 종교계 역할이 무엇인지, 천주교를 포함해 종교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이 위원장 : 종교는 사랑과 자비, 진실과 정의를 추구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는데 종교계가 전환점을 마련하고 힘을 모아주길 바랍니다. 특위 입장에서는 종교의 세월호 추모 움직임을 환영합니다. 종교계가 특위에 힘을 실어준다면 바람직할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서 도움을 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특위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종교계 지도자들을 만나 종교계의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우리의 미흡한 점을 평가받고 싶습니다.
이 위원 : 종교인들은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모자라는 신앙인이고 교리도 잘 모르지만 교황님께서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정말 적절하고 당연한 것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불행한 이들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중립은 권력과 정부로부터의 중립입니다. 국민과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중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모를 유가족의 슬픔을 우리 사회가 최대한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세월호 참사 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추모하고 기억하자’고 말하면 누구도 정치적이라 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추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앞에서 그들이 고통을 먼저 짊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그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 규명을 통해 반성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정의 회복을 위해서는 진실 규명이 먼저 되고 책임을 묻고 화해의 과정을 밟는 순서를 거쳐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에서는 아직 첫 단계도 못 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특위 위원들을 야당, 여당 추천으로 구분하는데 안 될 말입니다. 진실 규명에는 여야가 없습니다. 신앙인들이 세월호 희생자 추모의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정의 아니겠습니까?
장 국장 : 아직 실종자가 9명이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위원장 : 유가족들은 참사의 진실 규명을 위해 선체 인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선체는 참사 자체이고 리얼리티이고 물적 진실을 보여줍니다. 선체를 못 보고 판단하는 것은 진실과 괴리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선체 인양이 곧 진실 규명이죠. 유가족 요구도 같습니다. 제가 정부 입장이라면 당연히 인양합니다. 선체 인양의 사회적 비용과 이득을 비교해야 판단해야 하는데 스포츠 대회를 유치할 때도 경제적 비용과 대회 유치로 인한 자긍심 고취 등을 비교하지 않습니까? 선체 인양에 1200억 원이 든다고 하는데 선체 인양으로 인한 이익은 1200억 원과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선체를 인양해 우리 사회의 유산으로 남겨야 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한다는 의미에서도 1200억 원은 작은 돈이죠. 선체 인양 비용은 단순한 논리로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