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는 신천지 교회와 관련한 단어들로 뒤덮였다. CBS TV가 제작한 8부작 다큐멘터리 ‘관찰보고서-신천지에 빠진 사람들’ 때문이다. 시청률이 1%를 밑도는 종교 채널이라도 실제상황을 취재한 TV 시리즈물의 위력은 컸다. 신천지의 폐해는 천주교회에도 심각한 문제이기에 다큐를 챙겨 본 천주교인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신천지 다큐’가 내용(신앙)과 형식(매체) 양면에서 남긴 시사점을 짚어본다.
신자들이 신천지에 발을 담근 동기는 ‘말씀과 진리에 대한 갈망’이었고, 이단상담소에 와서 끊임없이 묻는 것도 ‘무엇이 진리인가’였다. 말씀과 진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라면, 그들이 신천지로 넘어간 것은 기성 교회에서 현실생활의 길잡이를 못 찾았기 때문이리라. 다큐의 결론도 자연히 ‘기본에 충실한 교회’였다. 순수한 동기를 품은 신자들이 교주 신격화와 선민주의에 빠져 다단계식 전도에 앞장서는 건 슬픈 역설이었지만, 그들이 가장 원하던 것이 말씀이었다는 고백은 천주교회도 새겨들을 대목이다.
개신교 이단상담가들이 실시하는 ‘반증교육’에서는, 내담자들을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설득하는 정성에 탄복하면서도 성경 해석을 통해 신천지 교리의 오류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방식이 좀 혼란스러웠다. 가족과도 소통이 안 될 만큼 왜곡된 신심에는 극약처방도 필요하겠지만, 신천지의 주입식 교리를 또 다른 주입식 교육으로 덮는다고 여겼다면 순진한 생각일까. 천주교회는 개신교의 반증교육보다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는지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내용만큼 눈여겨볼 것은 다큐가 파급력을 발휘한 방식이다. 일등공신은 인터넷이었다. 방송 전부터 계열사 매체인 CBS 라디오와 노컷뉴스는 예고 뉴스를 쏟아냈다. 시사 프로그램과 탐사보도로 얻은 매체들의 공신력, 포털사이트를 통한 뉴스 전달이 기사의 주목도를 높였다. 방송 직후 유튜브 채널(youtube.com/cbsjoy)에 전편을 무료 공개한 것도 주효했다.
매체를 평하는 입장에서 주목할 것은 방송 말미에 노출된 제작지원 목록이었다. 유명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이라면 대기업과 소비재 브랜드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텐데, ‘신천지 다큐’를 완성시킨 물적 지원처는 개별교회들이었다. 교회 이름의 크기는 아마 지원금 액수와 비례할 텐데, 이름이 크게 써진 유명 교회들은 물론 지방의 낯선 교회들도 뒷부분을 빼곡하게 채운 것을 보니 개신교의 위기의식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평화방송 TV를 비롯한 천주교 매체에도 재정은 현실적인 문제다. 매체의 영향력을 높이려면 콘텐츠가 우수해야 하고, 좋은 기획안을 현실화하려면 상당한 투자가 받쳐줘야 한다. 작은 교회들의 십시일반과 큰 교회들의 결단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린 ‘신천지 다큐’를 계기로, 천주교회에서도 콘텐츠 투자에 대한 전향적 인식이 이뤄지기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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