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니스아시아(아시아가톨릭커뮤니케이션 협회) 이사회가 지난 3월 26~28일 필리핀에 있는 라디오베리따스 아시아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 참석한 김승월 시그니스아시아 이사가 라디오베리따스 아시아 활동상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하는 글을 보내왔다.
“전기도 없이 정글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오랜 내전에 시달리며 숨어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글자도 모르고 가난해요. 그 분들에게 단파 라디오는 다른 세상 이야기 듣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지금 같은 스마트폰 시대에 누가 단파 라디오 듣느냐고 물었더니, 라디오 베리따스 아시아(Radio Veritas Asia, 이하 ‘라디오베리따스’) 가브리엘 신부가 그리 답했다.
라디오베리따스는 필리핀 케손시티 서쪽 교외에 있다. 코코넛, 바나나 같이 키 큰 열대수들이 하늘을 가린 틈새에 납작 엎드린 단층 건물이 보였다. 입구에는 느티나무처럼 우람한 망고나무가 서 있다. 안은 어둡다. 조명이 다 꺼져 있다. 스튜디오 가는 통로는 아예 캄캄하다. 스튜디오도 청빈하다.
특별한 장식 하나 없는 스튜디오에서 미얀마 출신 루치아 수녀와 만났다. 서른여섯 살, 3년 째 여기서 일한다고 했다.
“첫 방송할 때였어요. ‘영혼의 양식’이란 프로그램이었는데, 두렵고 힘들었지요. 저처럼 힘겨운 분들도 많을 거란 생각에, 알바해서 가족들 보살피며 공부하던 대학 친구 고생담을 들려드렸지요.”
그리고 청취자로부터 감사편지가 왔다. 죽음까지 생각할 만큼, 외로움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루치아 수녀의 이야기가 자기를 위한 이야기 같았다고 했다. 친구가 옆자리에서 위로하며 용기 주는 것 같았다고 했다. “청취자 바로 옆에 앉아서 말씀 드린다는 생각으로 방송하지요. 방송하고 나서는 청취자를 지향하며 묵주기도 바치고요.”
라디오베리따스는 1958년 아시아주교회의(FABC) 요청으로 독일 민간단체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중국, 베트남, 라오스와 같은 공산국가 지하교회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한때는 30여 개 언어로 방송하기도 했다. 요즘은 중국어, 베트남어, 미얀마어를 포함해 21개 언어로 강론, 교리 문답, 바티칸뉴스, 교양프로그램을 보낸다. 재정은 독일 민간단체, 바티칸, 아시아주교회의에서 후원 받는다. 라디오베리따스에서는 지역별로 운영중인 지국을 활용해 지역별로 해마다 ‘청취자와의 만남’도 마련한다.
“수백 킬로미터 먼 곳에서도 옵니다. 50여 명에서 500여 명쯤 참가하는데, 청취자들 반응이나 원하는 걸 조사합니다. 참가자들은 이 행사를 통하여 스스로 공동체를 만듭니다. 떨어져 살면서도 정보 나누고, 소통하며 서로 돕습니다. 미얀마에서는 이 모임에서 3쌍이 결혼하기도 했어요. 뉴미디어보다 훨씬 앞서 SNS 같은 역할을 한 겁니다.” 제작 부문 책임자 가브리엘 신부가 말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시대다. 라디오베리따스 역시 페이스북 같은 뉴미디어로 젊은층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세상 구석구석에서 누구나 인터넷 라디오(www.rveritas-asia.org)로 듣게 됐다. 지난해에는 스마트폰으로 청취할 수 있는 앱도 내놓았다.
작년 2월 휴가 때 루치아 수녀는 미얀마의 핀으린(Pyin Oo Lwin)에 다녀왔다. 동생 결혼식에 들렀다가 마을에서 열린 청취자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했다가 한 여성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을 방문 했다.
“아빠! 아빠가 좋아하시는 루치아 수녀님이 왔어요. 멀리 필리핀에서 아빠 만나러 온 거예요.”
공무원이었다는 아버지 다니엘은 전신 마비였다. 여든 살이다. 온 종일 누워 지낸다. 눈도 뜨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한다. 소리에 반응할 뿐이다. 건강할 때부터 듣던 라디오베리따스는 다니엘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 손자들과 아들, 딸, 온가족이 둘러앉아 듣는다. 수녀는 아버지 귀에 바싹 대고 속삭였다. “아저씨, 아저씨 사랑해요. 행복하세요.” 루치아 수녀는 다니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고 했다.
흔히 배고픔 하면 에티오피아 난민 같은 아프리카 이웃들 굶주림을 떠올린다. 영혼의 배고픔은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라디오베리따스는 굶주린 영혼을 위한 방송이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미얀마어 방송에 5년 동안 10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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