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같은 내용이 반복됩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목자를 예수님은 착한 목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착한 목자의 반대말은 ‘나쁜 목자’가 아니라 ‘삯꾼’이라고 표현됩니다. 목자와 삯꾼의 차이는 그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바뀝니다. 목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양들’이고 삯꾼의 목적은 말 그대로 그가 받게 될 보수입니다.
그렇기에 목자와 삯꾼이란 표현은 특별히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어떤 자세로 양들을 대할지, 무엇이 그들의 목적인지 잘 나타냅니다. 교황님도 ‘양의 냄새가 나는 목자’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제들을 향해 양과 함께하라는, 그들과 하나 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과 함께 생각해 본다면 무엇이 그들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는 표현에서 이미 예수님의 드라마를 알고 있는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착한 목자에 대한 언급은 단지 하나의 비유를 넘어서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시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착한 목자처럼 양들을 위해, 곧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제1독서에서 이것을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받았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오로지 그분에게만 구원이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베드로 사도의 말씀은 예수님의 사건을 요약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죽음에서의 부활. 부활 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 부활에 대해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어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다시 목숨을 얻는다.” 이 안에서 죽음과 부활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요한 1서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우리가 그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통해 얻게 되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현실의 중심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자리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부활을, 그리고 죄 많던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녀라는 지위를 가능케하는 힘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들은 모두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죽음을 이긴 부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알 수 있는 주님의 사랑 그리고 목자가 양들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모습 역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용어입니다. 각자의 체험에 따라 사랑은 그 모습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막연하게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의 것을 표현하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복음에서 들은 ‘목숨을 내놓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부활 시기를 지내면서 이제 우리는 부활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이 전해주는 부활의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합니다.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로 불린 것을 기억하는 날이면서 좁은 의미로는 사제, 수도 성소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날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도 성소자를 걱정하는 소리가 많아졌습니다. 훌륭한 젊은이들이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투신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말씀 안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