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 지난해 반영돼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TV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지금은 비정규직의 대명사로 통한다.
현재 한국 노동시장은 비정규직뿐 아니라 청년실업, 양극화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노동절(5월 1일)을 맞아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살펴보고, 그리스도인들은 노동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산다는 것
이 안드레아(가명·57)씨는 5년째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일은 하고 있다. 이씨는 24시간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환경으로 경비일을 시작한 후로 명절을 제대로 보낸 적이 없다. 출퇴근시간에는 입주민 차량을 빼거나 주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낮에는 아파트 주변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택배 받기, 전단지 수거 등의 업무를 한다. 이씨가 일을 해오면서 가장 힘든 것은 입주민들이 부당한 요구를 할 때다. 형광등을 교체해 달라, 집까지 택배 물건을 갖다 달라, 애완견을 찾아달라 등 주민들의 요구는 다양하다. 무리한 요구임에도 그는 입주민들에게 맞춰줄 수 밖에 없다.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어 입주민들에게 밉보이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장 데레사(가명·30)씨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의 주업무는 회사 제품에 대한 민원 처리다. 월급은 120~130만 원선. 주5일 근무에 토요일은 격주로 일하지만 별도의 수당은 없다. 입사 당시에는 연차가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 하지만 연차를 못 쓰더라도 연차수당은 나오지 않는다.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씨가 근무하는 곳은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 수당을 받는 이는 손에 꼽힌다.
집, 학교, 마트, 직장 등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임금 차이, 사회보험, 근로복지 등으로 사회 곳곳에서 차별과 서러움을 겪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형태는 다양하다. 비정규직 근로자 개념과 범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비정규직 규모는 크게 달라진다.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는 1차적으로 고용형태에 따라 ▲한시적 근로자 ▲시간 근로자 ▲비전형근로자를 뜻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비정규직 규모는 607만 명(2014년 8월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32.4%이다. 노동계에서는 사내하청, 특수고용직 노동자들까지 계산하면 10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50%가 넘는 규모다. 자영업자가 아닌 월급을 받는 사람 가운데 두 명 중 한 명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2014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정규직 평균임금은 289만 원,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144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차이는 임금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임금체계는 근속연수가 증가함에 따라 자동적으로 임금수준이 상승하는데 비해 비정규직은 1년차든 5년차든 임금인상 차이가 크지 않다.
노동에 대한 교회 가르침
그리스도인은 한국 노동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선 노동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인간 노동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노동하는 인간으로 창조하시고 노동의 사명을 주셨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은 나자렛 요셉처럼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는 노동을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 일이 비록 사회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서 힘들게 하는 것일지라도 인간이 수행하는 모든 노동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객관적 의미와 주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객관적 의미에서 노동은, 창세기에서 말하듯 인간이 땅을 다스리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데에 사용하는 활동과 자원, 도구와 기술의 총체이다. 주관적 의미에서는 노동 과정의 일부이며 자신의 개인적 소명에 부합하는 다양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역동적 존재인 개인의 활동이다. 따라서 교회는 노동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270-272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노동은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특성이며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인간 노동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필수이며 정당한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의 핵심 권리라고 가르친다.
노동 문제 함께 해결해나가야
교회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단순한 경제 논리만이 아니라 ‘공동선’에 입각해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데만 매달린 신자유주의체제 안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지기에 앞서 노동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 전체를 향해 연대성의 정신을 촉구한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노동절 담화문을 통해 “공동선 증진을 위한 연대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톨릭 사회교리 네 가지 기본 원리 중 하나인 연대성은 서로가 서로의 아픔에 함께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다양한 노동 현안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 당사자만의 문제로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불의한 노동 현실 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노동자의 중요한 연대활동 중 하나는 ‘노동조합’이다. 한국에서 노동조합은 폭력적인 집단,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 등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가 말하는 노동조합은 노동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협력할 수 있는 단체를 말한다.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문제를 제기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교회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노동의 근본 정신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누구나 영육간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기를 바라셨던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경제활동의 불균형과 비인간화를 극복하는 노력과 실천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 서울 노동사목위원회 정수용 신부
“현대판 신분제 고착화 우려, 노동의 존엄성부터 인정해야”
“우리나라 노동 현실 가운데 큰 고통을 낳고 있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이들의 고통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가 현대판 신분제도 고착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비정규직 노동자 가정의 자녀들 역시 낮은 임금 구조 안에서 동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 받지 못하고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신부는 노동은 인간 스스로의 존엄성을 실현시켜주는 것인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적으로 ‘노동’이라고 하면 육체적인 노동으로만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표현 자체를 하대하는 경향을 지적하며 “노동은 하느님 사업에 동참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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