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수도원 젊은 형제 두 명이랑 저녁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형제들은 식사하는 동안 나에게 자신들의 좌충우돌 수도생활을 들려주었고,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마음 아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형제들이 그저 대견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나도 나이를 좀 먹었나봅니다.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옳고 그르다는 평가를 하지 않고 형제들이 그저 좋으니 말입니다.
식사 후에 모처럼 거리를 걸어보는데, 근처에 극장이 보였습니다. 극장 간판을 보는 순간, 형제들은 보고 싶었던 영화가 개봉했다며 영화보기를 제안했습니다. 포스터를 보니 한국 영화고, 가족들이 함께 보는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그래, 좋아!’ 우리는 함께 극장에 들어가서 표를 사려는데, 영화가 끝나는 시간이 조금 늦었습니다. ‘이를 어쩌지!’ 그래서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영화 끝나는 시간이 좀 늦은데 괜찮겠어?”
그러데 안 괜찮은 사람은 나뿐이었습니다. 두 형제는 ‘영화가 늦게 끝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함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표정입니다. 그래서 영화 표 세 장을 끊고 있는데, 형제들은 당연히 음료수와 간식을 파는 옆 코너로 가서 또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식사 배와 간식 배는 따로 랍니다.
영화 상영 시간이 다 되어 극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록 늦게 끝나는 영화였지만 가족 영화라 그런지 가족들이 와서 보는 듯 했습니다. 특히 중년의 부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나도 오랜 만에 영화 보는 것이라, 수도원 들어가서 밤에 해야 할 모든 일을 접고, 마음 편안히 먹고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었고, 영화는 감동과 가족이라는 두 주제를 독특한 방법으로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혼자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영화와 나를 분리하며 영상과 배우들의 연기를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분명 가족 영화인데 어디선가 탱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바로 내 옆에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뿔싸!’ 내 우측 자리에 앉은 형제가 곤히, 아니 너무나도 편히 코를 골며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영화 내용이 점차 감동으로 흐르는 데 어디선가 누군가 서럽게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흐흐흑, 허…. 흑흑, 허….’ 코 푸는 소리와 함께! 그리고 그 사람은 스크린 속 배우들 보다 더 심하게 울고 있었습니다. 우는 소리가 너무도 가깝게 들려, 고개를 좌측으로 돌렸더니 좌측에 앉은, 덩치는 산더미 같은 형제가 영화 내내 배우들과 함께 울고 있었습니다. 배우들은 연기만 하는데, 우리 형제는 진짜로 울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의 영화 몰입도가 100%였습니다.
어떤 형제는 영화 보는 내내 유체이탈하여, 깊은 숙면과 함께 영화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렸고, 다른 형제는 영화 속 배우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배우들보다 더 완벽하게 영화 시나리오를 소화하였습니다.
살면서 건강한 취미를 가지고 짧은 시간 몰입도 100%의 흥미를 느끼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과하지 않고,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즐겁고 재미있는 일에 한두 시간 정도 몰입감을 가지고 지내는 것도 삶의 긴장을 푸는 좋은 방법 같습니다. 암튼 나는 영화 보는 내내, 형제들 때문에 창피하다 생각했는데, 영화 끝나고 나오면서 나도 형제들처럼 그렇게 몰입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좋은 몰입도, 영적 스트레스를 푸는 좋은 방법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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