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평화로운 봄날의 제주를 찾았다. 한림읍 성 이시돌 목장 옆에 세워진 한 연수원. 이곳에 서로 다른 교구에서 온 중년 사제 8명이 모여 있다. 정희완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수) 지도로 신학 강의가 시작되자 진지함과 동시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참여하는 사제들. 각자 사목경험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모습에 치열함보다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이곳은 범교구 차원의 사제 평생 교육기관, 주교회의 엠마오 연수원(원장 김용운 신부)이다.
5월까지 1기 안식년 프로그램
엠마오 연수원은 지난 3월 9일 1기 안식년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서울·대구·대전·부산·인천교구 소속 8명 사제들이 5월 30일까지 진행되는 12주 과정에 참가하고 있다.
안식년 프로그램은 사목 일선에서 잠시 물러난 사제들이 심신의 휴식을 취하고, 다양한 강의와 공동체적 삶을 통해 성숙한 사제로 살아갈 힘과 사목적 열정을 되찾도록 돕는다. 사제 양성의 네 가지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인성·영성·지성·사목적 측면을 새롭게 하고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되는 점이 안식년 프로그램의 특징.
1기 과정은 크게 강의와 생활 나눔, 현장체험으로 나뉜다. 화~금요일 마련되는 강의는 사제들의 영성과 사목적 자질 함양 등에 초점을 맞춘다. 토요일에 진행되는 생활나눔 및 현장체험은 한 주간 강의를 마무리하는 단계로, 각자에게 이번 강의가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프로그램 준비와 진행은 김용운 원장 신부를 비롯, 손어진 신부(예수 그리스도 고난 수도회), 김 사베리아 수녀(거룩한 말씀의 회), 송 그라시아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등이 맡고 있다.
김용운 신부는 “자신의 사목생활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도록 이끄는 프로그램들을 강의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며 “저마다 새로운 사목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참가 신부님들이 열린 자세로 긍정적인 분위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 공동체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고 1기 분위기를 전했다.
충분한 쉼과 나눔의 장
강의 후 점심식사를 마친 신부들이 주변 산책에 나섰다. 주어진 오후 자유시간에 무엇을 할 지 이야기를 나누며 한껏 들떠 있다. 이정업 신부(대전교구)는 요즘 올레길 걷기에 푹 빠져 있다고 밝혔다.
“제주라는 환경적 이점이 있어 신부님들과 올레길을 자주 걷습니다. 함께 어울릴 수 있고 건강도 챙길 수 있어 참 좋아요.”
이번 1기 과정에서는 연수 사제들에게 충분한 쉼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평일 오후를 자유시간으로 정했다. 사제들은 오후가 되면 무리를 지어 올레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레포츠를 즐기며 청정한 제주의 자연을 만끽한다. 저녁식사 후에는 자연스럽게 친교실에 모여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남궁은 신부(서울대교구)는 “서로 다른 교구 신부님들이 모여 교구간 벽을 허물고 친교를 나눌 수 있어 뜻 깊은 시간들”이라고 말했다. 유승학 신부(인천교구)도 “타 교구 신부님들과 친해지고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다른 사목환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이번 연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김 사베리아 수녀는 참가 사제들에 대해 “연수가 진행될수록 신부님들이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매일 미사·기도하며 사제의 길 성찰
매일 오전 7시20분에는 본관 경당에서 미사가 봉헌된다. 연수 사제들이 서로 돌아가며 미사를 집전하고, 성무일도도 바치고 있다. 신부들이 준비한 강론은 각자 연수 중 묵상한 내용들을 나누며 사제의 길을 되돌아보는 기회다.
4월 23일 미사를 주례한 김태형 신부(부산교구)는 올레길에서 얻은 생각을 강론을 통해 나눴다.
“제대로 정해진 올레길을 걷기 위해서는 표식을 잘 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처음 올레길을 걸을 때는 표식을 놓치지 않지만, 익숙해지면 안 보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연 경관이나 재밌는 이야기에 한 눈 팔아 엉뚱한 길로 가고 맙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서도 주님의 이끄심에 잘 따라야합니다. 익숙하다거나 내가 주도할 수 있겠다는 겸손치 못한 어리석음이 개입되면 길을 벗어나겠지요. 하느님의 길을 가려 하는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고 계속 의식하며, 하느님께 내맡기는 삶을 살아야 함을 올레길과 이번 연수를 통해 깨닫습니다.”
체험 프로그램 강화 요청도
연수 사제들은 안식년 프로그램에 대해 참여 중심 내용이 보다 강화되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준비된 프로그램이 새로운 지식 습득과 사제 신원의식 확인 등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안식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심신 휴식과 영성 함양 역시 앞으로의 사목활동 준비에 꼭 필요하다는 뜻에서다.
김두찬 신부(대구대교구)는 “일상의 삶과 접근할 수 있고, 각자 사제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이 보다 강화되면 좋겠다”며 “필요한 프로그램을 신부들이 자율적으로 찾아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형 신부는 “그동안 사목일선에서 여유롭지 못했는데, 건강을 챙기고 친교를 나누는 것이 다음 사목활동을 준비하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용운 원장 신부는 앞으로 체험과 대화 중심 프로그램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신부는 “신부님들과의 대화, 소통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어떻게 하면 안식년 취지에 맞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지에 대해 최대한 의견을 받고, 공동체에 활기를 주기 위해 서로가 노력할 부분에 대해서도 꾸준히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 1기 안식년 연수 프로그램 참가 사제들이 연수동 경당에서 미사를 공동 집전하고 있다. 사제들은 매일 오전 7시20분 미사와 성무일도를 바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 정희완 신부(맨 오른쪽)가 지도하는 신학 강의에서 연수 사제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1기 안식년 프로그램에는 인성·영성·지성·사목적 측면에서의 다양한 강의가 마련돼 있다.
▲ 연수 중인 사제들이 올레길을 걷고 있다. 휴식을 취하고 친교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 일환이다.
■ 주교회의 엠마오 연수원은…
범교구 차원 사제 평생 교육기관
수도자·평신도 재교육 장으로도 활용
범교구 차원으로 운영되는 사목자 및 사목협력자 평생 교육기관이다. 작년 10월 27일 제주시 한림읍 한창로 992 현지에서 축복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에 나섰다. 사제 안식년 프로그램을 개발·시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수도자와 평신도 등 사목협력자들까지도 아우르는 영적 쉼과 재교육 지원의 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설은 크게 강의실과 경당 등으로 구성된 연수동, 5개의 숙소 건물과 1개 휴게실 건물로 이뤄진 숙소동으로 나뉜다. 숙소동은 안식년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숙식하는 곳으로, 2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안식년 프로그램은 3개월씩 연 2회 시행되며, 올 하반기에는 9월 14일 시작된다. 신청은 각 교구 사무처를 통해 받는다. 이곳은 안식년 프로그램 외에 자체적인 단기 사제피정, 장·단기 사목연수 등으로도 활용된다.
※문의 064-796-5227 주교회의 엠마오 연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