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봄비가 내리던 날, 87세 되신 할아버지가 순례를 오셨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시자마자 “신부님이시네!”라며 반가워하셨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성지 회원이라서 매달 월보가 집으로 왔다고 하시며 월보에 있는 사진을 자주 봐 그런지 바로 알아보겠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작년 12월 29일에 하늘나라 갔어요. 죽기 전에 여기를 와보고 싶다고 했는데 못 데리고 왔어요. 죽을 때 나한테 여기를 꼭 가보라고 하면서 죽었어요. 그래서 제가 오늘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비신자셨는데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세례도 받으셨다고 한다.
“할머니 말을 듣고 바로 ‘와야지, 와야지’ 했는데 못 왔어요. 오늘은 ‘맘을 먹고 죽기 전에 가 보자, 걸을 수 있을 때 가보자’하고 왔습니다. 와보니 정말로 좋네요. 참 좋습니다.”
돌아가시는 순간 남양성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셨던 할머니께도 감사하고 할머니의 말씀대로 찾아와 주신 할아버지께도 참 감사했다.
남양 순교지를 성모님께 봉헌해 드린 후 어느덧 스물네 번째 맞이하는 성모성월이다. 처음 이곳을 성모님께 기도하는 곳으로 봉헌하면서 꿈꾸었던 것이 ‘언제라도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으로 찾아와 기도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며 안식처, 친정집 같은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지난해 이맘때쯤 어머니의 유골함을 들고 찾아온 가족을 만났던 일도 기억난다.
“어머니가 늘 남양성모성지 이야기를 하시며 큰 묵주알 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바치면 마음이 평화로워 지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토요일에 함께 가시자고 약속을 드렸는데, 그 말씀이 어머니의 유언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어머니께서 마지막까지 오고 싶어 하셨던 곳이 바로 남양성모성지라서 화장터에서 제일 먼저 이곳으로 모시고 왔다고 하며 강복을 청했다. 성모님께 할머니의 영혼을 맡겨드리고 그 가족들을 배웅하며 할머니께서 자녀들에게 좋은 유산을 남기고 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자녀들은 살면서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이곳에 와서 기도드리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잃는다는 것은 집을 잃는 것이고, 고향을 잃는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그런 자녀들에게 할머니는 ‘아름답고 자비로우신 우리들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계신 집을 알려주고 가신 것이다.
이번 5월에는 더 많은 가족들이 성모님의 집에 찾아왔으면 좋겠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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