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 아래 나서니 숨통이 좀 트이는 듯하다. 이번엔 동물원 나들이다. 온종일 엄마 뒤를 쫓아다니며 놀아 달라 칭얼대던 아이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 한껏 신이 났다. 생전 처음 보는 동물원 풍경에도 연신 환호한다. 아이들이 뛰노는 사이, 엄마들도 ‘가족’들과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혼자 힘으로 아이를 돌보고, 밥벌이를 하고, 자립을 위한 배움의 시간까지 내야 하는 ‘양육미혼모’의 하루하루. 잠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켜켜이 쌓인 양육 피로를 한 번에 녹아내리게 한다.
또 다른 이름의 가족
양육미혼모들과 봄나들이에 나선 ‘가족’들은 청주교구 새생명지원센터(센터장 이준연 신부) 직원들이다.
새생명지원센터와 연계된 청주 지역 양육미혼모들은 센터 직원들을 자신들의 또 다른 가족이라고 말한다. ‘미혼모’라고 손가락질 당할 때, 어두운 곳에 숨어 아이를 안고 울고 있을 때, 센터 직원들은 그들을 ‘미혼모’가 아닌 ‘생명을 지키고 살린 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손을 먼저 잡아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줬다.
생명수호 활동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는 새생명지원센터는 2012년부터 미혼모·부자 거점사업을 진행, 양육미혼모에 관한 의식 개선을 비롯해 미혼부모의 내·외적 자립을 위한 교육, 친교·문화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자녀의 성장 단계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응급처치법과 자녀와의 대화법 교육을 비롯해 힐링캠프 등의 각종 문화체험의 장도 마련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센터는 ‘어머니학교’를 통해 미혼모들이 자기성찰과 치유의 시간을 가질 뿐 아니라 올바른 어머니상을 세우고 자립하도록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또 양육미혼모 자조모임이 보다 의미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다양한 상담과 교육·문화·친교 프로그램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덕분에 어머니학교를 수료한 이들은 스스로를 ‘행복운전수’라 부르며 자조모임도 이어가 관심을 모은다. 자조모임에서는 매달 다양한 삶의 주제를 정해 서로 공부하거나 체험한 것, 다양한 의견 등을 공유한다. 나아가 음지에서 힘겨워하는 양육미혼모들을 돕는 데에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나는야 행복운전수
“주님, 저는 행복한 어머니입니다.”
이 고백을 하기까지 대부분의 양육미혼모들은 불안과 긴장, 눈물과 극심한 피로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뱃속에 아기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도 귀한 생명을 낳아 기르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생명을 지킨 대가는 혹독했다. 가족들의 반대는 그나마 견딜만했다. 수많은 사회적 편견에도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경제적 빈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강제로 낙태를 시키려는 아기 아빠와 그 가족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경우도 왕왕 있다. 아기를 낳게 해줄 테니 그 대가로 돈을 내놓으라는 인면수심의 아기 아빠까지 볼 수 있다. 책임을 회피하며 연락을 끊어버리는 아기 아빠들의 태도는 양호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혼부들이 양육을 책임지게 하는 제도는 매우 미흡하다. 출산과 양육을 이어가는 양육미혼모 가정에 정부가 주는 지원금도 고작 1년에 70만원이다. 교회 안에서의 편견도 만만찮다.
우리사회 양육미혼모 대부분은 20~30대 여성들로 추정된다. 청소년 미혼모들은 많은 경우 입양을 보내거나 낙태를 선택하곤 한다. 양육미혼모 중에는 혼인빙자간음뿐 아니라 유부남, 전과자 등에게 피해를 입은 사례도 수두룩하다.
“엄마와 아이 둘이서만 산다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이상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 시선은 저희가 만든 것이 아니지요. 세상에서 가장 씩씩한 엄마가 되고 싶어요. 어두운 곳에서 나와 빛을 보며 살아가고 싶어요. 새 생명이 주는 기쁨, 엄마로 살아갈 수 있는 기쁨은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새생명지원센터 양육미혼모 자조모임 대표 우미령씨의 말이다.
낙태가 아닌 생명을 선택한 이들을 편견없이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우리 사회가 생명을 지키고 키워나가는 또 다른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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