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베드로의 이 표현은 사도행전에서 분기점 역할을 합니다. 이 말씀은 이제 모든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 역시 믿음을 통해 구원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오늘 제1독서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할례를 받은 신자들’과 ‘다른 민족들’입니다. 전자는 유다인 중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을, 그리고 후자는 유다인들의 시각에서 이방인들을 나타냅니다. 더 이상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은 유다인들에게만 유보된 것이 아니라 민족을 넘어 믿음을 갖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베드로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줍니다. 흔히 우리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사도행전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이었던 초대 공동체에 이방인 출신의 신앙인들이 포함되는 역사의 과정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부활 시기 동안 요한 1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이루는 친교와 공동체 안에서 실천되는 형제적 사랑을 강조하는 요한 1서는 이제 그 사랑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을 나타내는 많은 특성 가운데 요한의 서간이 전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외아드님의 육화를 통해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것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고 우리는 그 사랑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예수님은 우리 안에 오셨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그리고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은 명령을 따르는, 복음의 표현대로라면 ‘계명을 지키는 것’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계명은 지켜야 할 규율이기보다는 하느님의 의지나 뜻을 표현하는 용어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보여주신 것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모습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충만한 기쁨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사랑에서 시작한 하느님의 업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고 이제 그 일을 우리에게 지속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부활 시기의 마지막에 우리가 듣는 단 하나의 말씀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흔히 쓰는 말이기에 너무 평범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또 우리가 행하는 그릇된 ‘사랑’의 모습에 그 의미가 퇴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가끔 소유나 만족이라고 불러야 할 것들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분명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나를 향해 모아들이고, 내가 중심인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다른 이들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내 방식 대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모습대로 사랑합시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에 대한 가장 바른 응답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응답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기쁨 또한 충만해질 것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태리 로마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 성서학 석사학위를,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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