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지진으로 인한 비극의 현장을 다니며 ‘피할 수 없는 자연 참사로 발생한 네팔의 위기는 기회로 전환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여진이 잦아들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지진은 산과 계곡, 강과 호수를 흔들고 휘저어 놓았습니다. 네팔의 산천이 본래 있던 자리에서 이동될 정도로 이번 지진은 엄청난 강도였습니다. 피해가 심한 수도 카트만두는 10m나 남쪽으로 이동했고 높다랗던 언덕은 내려앉았습니다. 강진이 발생할 때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만큼 한없이 나약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자연재해 앞에서 새 희망을 길어올릴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라 생각하며 피해 현장을 찾아다니는 중입니다.
4월 25일 지진이 발생한 후 만 이틀 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의 생존과 안전을 묻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사흘이 지나고 4월 28일이 돼서야 네팔 카리타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급하게 조성한 텐트촌을 카리타스 실무자들과 다니며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카트만두 분지 내 네왈(newar)족들의 전통문화를 보존해 온 사원과 탑들이 무너지고 전통가옥들은 허망하게 내려앉아 수많은 시민들이 텐트 하나에 의존해 폭우를 피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대참사를 맞아 텐트촌에서 겨우 라면 한 봉지와 주스 한 개를 받았다고 하소연하는 시민들은 마치 양친을 잃은 고아들 같아 보였습니다.
이럴 때 그래도 가장 신속하게 행동에 나서는 곳이 가톨릭교회였습니다. 재난에 직면한 네팔 카리타스가 교회의 이름으로 박타푸르, 고다파리, 파탄과 루부를 위시해 피해가 심한 현장으로 식료품과 텐트를 공급하러 나가고 있습니다. 인도, 독일, 오스트리아와 호주, 미국의 카리타스에서 실태 파악을 위한 실무진들이 속속 도착해 다른 국제기구들과 공동협력을 위한 회의를 연일 여는 긴박한 상황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지혜와 능력을 모으고 조직해야 하지만 네팔의 지형적 조건과 102개나 되는 부족어가 말해 주듯 종족의 다양성과 문화 차이로 긴급구호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카트만두 분지 내 도시들은 접근이 용이해 급하게 일을 하려는 단체들이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도로가 훼손된 지역과 통신망이 잘 닿지 않는 외딴 지역은 실태 파악을 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다 우기도 아닌데 거의 매일 비가 내리고 있을 뿐 아니라 두 달 후에는 우기가 시작되니 구호활동은 더디어질 전망이라 걱정됩니다. 잘 훈련된 활동가와 이송차량 봉사자 그리고 피해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협력할 수 있는 현지의 지도자들이 호흡을 맞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진 발생 직후여서 커다란 충격으로 온 세상이 네팔에 관심을 보이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리적 조건을 비롯해 네팔의 여러 악조건을 함께 헤쳐나갈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연대입니다.
앞으로 학교의 파손 실태와 어린이들의 희생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려면 20일 이상 소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교육 지원을 위해 네팔에 왔으므로 학교와 어린이들의 소식을 더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고르카 지역으로 긴급구호팀과 이동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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