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이하 샬트르 박물관)은 수녀회의 역사자료를 수집, 연구, 보존, 전시하기 위해 설립된 종교전문 박물관이다. 수도회의 기원과 역사를 배우고 바라보고 기억함을 통해 수도회의 영성과 사명을 새롭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의 첫 수녀회로 한국 사회 안에서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온 수녀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역사적 유물과 사료는 신앙과 사랑의 숨결로 이 시대에 빛의 증거자가 돼 우리를 비추고 있다.
샬트르 박물관은 수녀원 본원 내 위치하고 있으며 신자 및 일반인에게 모두 개방하고 있다. 관람 전 전화 예약이 필요하고 개관 시간은 오전 10시~11시30분, 오후 1시30분~4시30분.(화요일과 성삼일 및 공휴일은 휴관)
샬트르 박물관 유물 중 가장 먼저 소개할 것은 「자카리아 수녀의 일기」다. 이 일기는 한국의 첫 선교 수녀로서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제1대 원장이었던 자카리아 수녀(1843~1889)가 1888년 5월 31일 프랑스 샬트르를 떠나 상하이에 이르기까지 두 달 간의 여정을 기록한 수도회의 소중한 영적 자산이다.
자카리아 수녀는 1888년 5월 31일자 일기에서 “사랑하는 수녀원 문을 마지막 나오면서, 또한 어렸을 때부터 당신 보호의 망토로 나를 감싸주시고, 내 사랑하는 성소의 인도자이시고 수호자이신 성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을 때 느꼈던, 마음 찢어지는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기록했다. 이 같은 인간적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일기의 곳곳에 적은 ‘A.M.D.G.’(Ad Majorem Dei Gloriam,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로 보아 하느님만을 신뢰하며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제물포까지 모두 배로 이동하느라 극심한 멀미로 인한 고통과 성사생활을 하지 못하는 영적인 괴로움 속에서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견뎌내는 선교사의 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
그는 이 땅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며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불타는 사랑을 증거하다 겨우 6개월 만에 과로와 병으로 46세에 선종해 한국교회 안에서 수도회의 초석이 됐다. 그의 이 여행일기는 2008년 「조선에 온 첫 선교 수녀 자카리아의 여행일기」라는 제목으로 간행됐다.
자카리아 수녀의 사진은 「조선에 온 첫 선교 수녀 자카리아의 여행일기」 간행을 준비하던 중,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신경숙 작가의 소설 「리진」(2007)을 통해 우연히 발견됐다. 작가 후기에 자료조사 도중 선교 수녀들의 사진을 보았다는 언급이 있었고, 그에 따라 프랑스국립도서관(BNF)과 동양어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던 선교 수녀들과 관련된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은 콜랭이 자카리아 원장 수녀와 에스텔 수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운영하던 종현보육원 보모 및 여아들을 1888년 11월 14일 찍어 개인 사진첩에 보관한 것이었다. 현존하는 종현보육원의 가장 오래된 사진으로 한국교회의 초창기 사회복지 사도직을 증거하며 한편으로 초대 원장 자카리아 수녀를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사진이기도 하다. 선교 수녀들이 조선에 도착한 지 불과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에 찍은 것으로 말도 채 배우지 못한 아이들부터 열댓 살 아이들의 정돈된 머리 모양과 옷 가짐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조선말과 풍습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를 잃은 설움에 가득 찬 아이들을 돌보려 애썼던 수녀들과 그에 발맞춰간 보모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샬트르 박물관의 또 하나의 대표적 유물로 수녀원 초대 지도신부였던 코스트 신부가 프랑스 신학교 교수로 있던 뮈텔 신부(후에 주교)에게 부탁해 1890년 경 받은 풍금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풍금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합창단이라 볼 수 있는 종현보육원 원생들이 이 풍금으로 서양 전례음악을 익혔고 명동성당 미사와 성체강복식 등 주요 전례 때 그레고리안 성가를 아름답게 불렀다. 또한 교구의 주요 행사 때에도 중요한 몫을 해냈다. 수녀들은 고아원 내에서 소녀 성가대 혹은 소년 성가대를 별도 조직했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나이가 어린 소녀들로만 구성해 성가를 부르게 했다. 수녀들의 지도로 아이들은 어려운 성가들을 꽤 정확히 목청껏 부르며 하느님을 찬미했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더욱 큰 감동을 자아낸 이 성가대는 한편으로는 고아들의 영적인 성장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고 수녀들에게도 큰 보람이었다. 재미난 사실은 프랑스에서 보낸 풍금의 제작은 미국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프랑스에서 풍금을 제작할 수 없어서 모두 수입했다고 한다.
※문의 02-3706-3255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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