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大) 데레사’로도 불리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St. Theresa of Avila)는 따뜻한 마음과 섬세함 그리고 활기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성녀는 수도자들이 어둡고 비열한 현실 속에서 무지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지녔다고 강조하고, 청빈·고행·기도를 지침으로 삼아 수도 사업을 전개했다.
성녀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을 비롯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의 저서를 열독하고, 학식이 깊고 성덕이 뛰어난 동시대의 영적 조언자들과 자주 접했다.
1515년 3월 28일 스페인 아빌라에서 태어난 성녀는 어릴 적부터 신심이 깊었고 책읽기를 좋아했다. 일곱 살에 순교 성인전을 읽고 오빠와 함께 순교자가 되겠다며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가출한 적도 있었다. 19살 되던 해 아빌라의 강생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해 수련 수녀가 됐고, 여러 가지 영적 수련을 통해 자신을 단련했다.
1562년 성녀는 가르멜의 초기 규칙대로 엄격한 수도 생활을 하고자 뜻을 같이하는 4명의 수녀들과 함께 ‘맨발의 가르멜회’를 시작하면서 아빌라의 성 요셉 수녀원을 창립했다. 그때부터 끊임없는 고행의 순례를 통해 많은 가르멜 수도원을 개혁했다. 그러나 성녀의 개혁에 반감을 가진 기존 가르멜회와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당시 교황은 ‘맨발의 가르멜회’를 분리시켜 독립 수도회로 인정했다. 성녀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개혁 사업에 투신했고, 1582년 10월 4일 66세의 나이로 하느님 곁으로 떠났다.
1614년 복자로 시복, 1622년 시성된 성녀는 저서를 통해 ‘기도의 스승’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자신의 생애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를 고백하고 기도생활을 상세히 기록한 「자서전」과 가르멜 수녀들에게 기도 및 영성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 「완덕의 길」, 자신의 영성생활을 종합한 「영혼의 성」 등을 집필했다.
가르멜 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39년 7월 ‘맨발의 가르멜 여자 수도회’ 소속인 프랑스의 멕틸드와 마들렌 수녀가 내한하면서 이뤄졌다. 마들렌 수녀는 6·25 중 납치돼 북으로 끌려간 뒤 3년 간 옥고를 겪기도 했지만 수녀회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했다. 교구 내에는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 근처에 수녀원을 설립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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