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르드’는 프랑스 남쪽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성모발현성지로서 불치병을 치유 받은 사람들의 흔적이 숱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영화 ‘루르드’는 이 기적의 장소를 찾아온 한 여성의 순례길을 따라가면서 기적과 신앙의 문제를 탐구한다. 단순하고 절제된 미장센과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화면에서 대사로 전달되는 메시지보다 관객 스스로가 생각하고 찾아내야 할 것이 더 많은 작품이다.
주인공 크리스틴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다. 그런데 그에게는 치유나 기적에 대한 갈망이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비극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며 우울하게 살아온 그녀는 순례길에서 마주치는 남자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누군가 자기를 불러낸 것처럼 혼자 몸을 일으켜 걷게 된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적의 주인공이 된 크리스틴은 활력을 얻고 기뻐하지만 그녀보다 더 간절한 기도와 희생으로 기적을 바랐던 사람들은 실망과 질투의 눈길을 보낸다.
‘하느님이 전지전능하고 선하시다면 모든 이를 낫게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어떤 사람의 병은 고쳐주시고 어떤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 건가?’,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순례단의 입을 통해 하느님과 기적에 대한 의문이 쏟아지고, 그 질문들에 공감하다 보면 어느새 관객인 자신도 토론에 참여하게 된다. 영화는 섣부른 답을 내놓기보다 순례단 신부를 통해 조심스럽게 말한다.
기적은 ‘외적 치유’만이 아니라 ‘내적 변화’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불현듯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도 기적이고 외적인 치유를 받았다 해도 그것을 통해 영혼까지 변화되지 않는다면 은총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베 마리아’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잘 정돈된 식탁 위로 음식이 놓이고, 식당 안에 한 사람 한 사람씩 등장하는 첫 장면은 서로 다른 상처와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고, 다양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하늘나라의 잔칫상에 초대받은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식탁에서의 기도처럼 일상 안에서 축복을 발견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때, 그것이 행복이고 기적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적의 주인공으로 계속 서 있으려고 하다가 넘어진 크리스틴이 다시 평온하게 휠체어에 앉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 따르기 위해 기도하면서도 내가 바라는 표징을 요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은총은 외면한 채 남이 받은 것만 보고 부러워하면서 하느님의 능력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지는 않는지 이 영화는 묻는다.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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