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수녀회의 영성은 성녀 빌리아르(St. Julie Billiart)에 뿌리를 두고 있다.
1751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성녀는 14세의 나이에 스스로 동정 서원을 할 만큼 신앙심이 깊었다. 그러나 1774년 23살의 나이에 신경 조직이 마비되는 증세가 나타나고, 1782년에는 의사의 부주의로 회복 불가능한 전신 마비의 불구자가 돼 30년 간 병상에서 지냈다.
이런 시련 속에서도 성녀는 하느님 사랑에 보답하고자 일생을 어린이와 부녀자들의 교육을 위해 바칠 것을 맹세하고, 동료들과 1804년 노틀담수녀회를 창설했다.
그 해 성녀는 예수 성심께 완치의 은혜를 구하는 9일 기도를 드리고 병이 완쾌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성녀는 더욱 전교에 힘써 ‘걸어 다니는 하느님의 사랑’이라 불리기도 했다. 평생을 신앙 전파에 힘썼던 성녀는 65세 때인 1816년 4월 8일 하느님의 품으로 갔다.
1848년 무렵 성 람베르트 성당 소속 학교의 여교사 2명은 독일 쾨스펠트에서 새로운 수녀회의 기초를 마련했다. 빌리아르 성녀의 삶과 노틀담수녀회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이들은 자신의 집에 고아들과 버림받은 이들을 받아들이고 교육하며 평생을 가난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
당시 이들을 지도하던 본당 보좌 테오도르 엘팅 신부는 노틀담수녀회가 두 여교사가 시작한 공동체의 목적과 같은 사도직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돼, 노틀담수녀회를 초대해 두 여교사를 양성하게 했다. 여교사 힐리곤데 볼브링은 마리아 알로이시아 수녀가, 엘리사벳 큘링은 마리아 익나시아 수녀가 됐다.
한국 노틀담수녀회는 이 쾨스펠트 노틀담수녀회 소속이다.
1967년 한국에 진출한 수녀회는 1975년부터 경기도 오산에 새로 유치원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1977년 ‘노틀담유치원’을 개원했다. 초기 수녀들은 경기도 벌읍리 지역으로 나가 마을회관에서 이동 유치원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한국 최초로 몬테소리 유아교육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노틀담유치원’은 몬테소리 교육과 국가 누리교육과정, 인성교육을 위한 실천교리(RPP), 음악 교육인 오르프 수업 등에 교육 원칙을 두고 있다. 또한 수녀회는 교구 내 성남대리구 분당성마리아본당 유치원과 안산 대덕어린이집 등에서도 교육 사도직에 힘쓰고 있다. 결손, 조손 가정 등 부모 돌봄의 손길이 부족한 아이들의 공동생활가정인 ‘하늘땅이네’와 노인요양시설 ‘노틀담사랑터’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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