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추기경)가 공동주최한 ‘생명의 복음’ 반포 20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는 회칙이 전한 예언자적 통찰을 다시 한 번 성찰하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 수호라는 시대적 요청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이날 세미나는 5월 30일 오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신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세미나는 생명윤리학자, 의학자, 과학자, 인문과학자 등 인간 생명과 관련된 제반 학문의 전문가들을 망라해 진행됐다.
이날 세미나 참가자는 발제에 이동익 신부(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김중곤 교수(서울대 의대), 김동광 연구교수(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유혜숙 교수(대구가대 인성교육원), 논평에는 박정우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구영모 교수(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김수정 교수(가톨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정재우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등이 참여했다.
‘생명의 복음’, 생명윤리의 교과서
현대사회를 향한 긴박한 호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생명에 대한 위협들을 회칙 ‘생명의 복음’은 ‘죽음의 문화’로 요약한다. 회칙은 생명에 대한 위협이 산발적이거나 지엽적인 것이 아니며, ‘문화’로 일컬어야 할 만큼 깊고 방대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동익 신부는 ‘생명의 복음 반포 배경과 내용’에 대한 발제에서, 회칙의 다음과 같은 항목에 주목했다.
“개인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생명을 거스르는 일련의 범죄들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행위들을 완전히 자유롭게, 그리고 보건 제도의 무료 봉사까지 받아가면서 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4항)
이 신부는 회칙이 “강력한 교도권으로 제시되는, 생명윤리 교과서”라고 규정하고, “현대 사회를 향한 교회의 긴박한 호소”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신부는 회칙이 우려하는 생명에 대한 위협들이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회윤리, 정치윤리로까지 이동한다고 말했다. 즉, ‘죽음의 문화’는 개인을 넘어서는 ‘죄의 구조’를 지닌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과 생명의 복음
상업화된 과학기술, 필요한 연구는 소홀
생명과학과 과학기술사회가 인간 생명에 미친 영향을 점검한 제2,3발제는 과학과 의학의 발달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야기해온 부정적인 측면을 ‘생명의 복음’에 비추어 성찰했다.
김중곤 교수는 ‘‘생명의 복음’과 생명과학’에서 생명과학 발달로 인해 “생명과학의 중심에 있어야 할 인간 존엄성 또는 생명의 가치 존중이라는 원칙 대신 효율성과 경제성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태술, 태아 진단 등으로 상징되는 무분별한 생명과학의 활동은 생명에 대한 폭력, 생명 가치의 상실로 나타나고 결국 이는 생명과학이 ‘죽음의 문화’에 연결된 부끄러운 예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동광 교수는 과학기술사회 속에서 ‘과학지식생산양식 변화와 생명 파괴의 구조’라는 주제의 발표문에서 ‘죽음의 문화’에 대한 회칙의 깊은 우려는 과학 지식의 생산 양식에서 나타난 변화가 큰 몫을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즉 과학기술 역시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은 “생명, 환경, 보건, 안전, 윤리 등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간과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측면”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관철되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이념 안에서, 과학과 의학은 상업화에 매몰되고, 특히 이 상업화는 일부에 국한되지 않고 ‘전 지구적 사유화 체제’, 즉 ‘세계화’된다.
김동광 교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돈이 되는 분야에만 연구비가 몰려 일부 분야는 흥청망청 연구비를 사용하면서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빚어지는 반면, 생명, 안전, 윤리, 환경 등의 주제에는 연구비가 주어지지 않아서 필요한 연구마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시민사회와 생명운동은 첫째, 생명을 파괴하고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에 대한 관심, 둘째, 사회운동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 해석, 즉 필요하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연구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실천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래사회, 생명에 대한 위협 극대화 우려
‘생명의 문화’ 위한 거대한 전쟁
제4발제를 맡은 유혜숙 교수는 ‘생명의 복음’에 비추어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견하고 필요한 과제를 점검했다. 유 교수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 물질주의, 신자유주의, 세속주의, 다원주의 등이 더욱 극대화되어 “생명의 위기 상황을 초래하고 그 위기 상황을 합리화하는 이론적 근거로서 강력하게 자리할 것”이라고 보았다.
‘생명의 복음’은 이미 20년 전에 이같은 우려를 표명한 바 있으며, 미래 사회에 이러한 경향은 더욱 극대화될 것이라는 깊은 우려이다. 유 교수는 회칙 24항을 인용, “개인과 사회의 윤리 의식은 모두 극도로 심각하고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했다”며 “사회가… 생명을 거스르는 실제적 ‘죄의 구조들’을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죽음의 문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따라서 근현대의 반생명적 사조와의 싸움은 거대한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의식의 전환을 통한 인류 보편의 가치 회복, 사회적으로는 사회악의 개선을 위해 선의의 모든 이들이 함께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