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루이지 마리아 몬티는 영육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청소년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 창설자이자 수사들의 영적인 아버지인 복자는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겸손하게 헌신하며 봉헌의 삶을 살아갔다.
복자 몬티의 두터운 신앙은 가정에서 시작됐다. 그의 아버지가 ‘가정은 교회’라고 강조하며 성가정을 꾸려나갔기 때문이다. 12살 되던 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생업에 뛰어든 그는 일을 하면서도 기도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도자와 다름없는 ‘재속 봉헌’의 삶을 산 복자의 모범은 많은 젊은이들을 감동시켰다.
직장과 마을 동료들은 복자에게 모여들었고, 직장을 마치 수도원처럼 생각하며 복자와 함께 자신들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했다.
1852년 복자는 동료 5명과 함께 수도회를 설립하고 1858년부터 로마의 성령(S, Spirito)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이를 위해 외과 응급처리와 간호사 업무를 배웠다.
복자는 수많은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성모 마리아의 계시에서 힘을 얻었다. 그에게 나타난 마리아는 “용기를 내어라. 네가 나를 위해 젊은 청년들을 모아 그들이 순수함을 지키고 정결 속에서 살 수 있도록 그토록 많은 일을 했는데, 그런 너를 내가 저버릴 수 있겠느냐? 용기를 내어라”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서의 삶이 주님의 뜻을 행하고 주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환자들을 돌보는 가운데도 성경을 읽고 기도와 성사 속에서 하느님을 갈망했다.
수도회를 설립하고 1877년 수도회 총장까지 역임했지만, 대우를 받길 바라지 않았다. 말년에 병으로 고통 받던 그는 특별한 간호와 치료를 마다했다. 극심한 고통조차 하느님을 위한 봉헌으로 여기며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하고 주님께 기도했다.
그가 설립한 수도회는 복자의 영성에 따라 동정 마리아를 수도회의 주보성인으로 모시며 의료분야, 교육분야, 사회복지분야에서 다양한 사도직을 실천하고 있다. 1996년에는 교구에 진출해 장애인복지, 상담, 병원 원목, 이주사목, 피정의 집 운영, 화장품 판매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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