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 주간을 마무리하며 예수님의 죽음과 더불어 죽음에 대해 좀 살펴봤으면 합니다. 병을 모르는데 건강을, 늙음을 모르는데 젊음을, 추함을 모르는데 아름다움을, 알 수 있겠습니까. 삶과 죽음도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죽음 내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보니 현세의 이 삶에 대한 이해도 지극히 불완전하고 왜곡되어 버립니다. 삶과 죽음을 아우른 전체에 대한 그림이 없이 삶이라는 반쪽만 놓고 바라보다 보니 이 삶이 뒤틀려 버리고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잃어 버린 채 표류하고 마는 것입니다.
과연 죽고 나서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여정이 이어지는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사실 죽음이라는 것만 놓고 보면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별 차가 없는 듯합니다. 생명의 단절이란 죽음을 앞에 두고 커다란 슬픔과 상실감 그리고 외로움에 몸부림칩니다. 신앙을 지닌 이들 같으면 사람이 죽고 나서 다시 부활하여 하느님 곁에 간다고, 그리고 천국에서 하느님과 함께 지낼 것이라고 막연한 위안을 갖기는 합니다만 그다지 힘이 되는 것같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의 모습에 대해 참으로 뿌옇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미지들 밖에 갖고 있지 못하고, 그 결과 죽음 앞에서 크게 당황할 뿐만 아니라 현세의 삶 마저도 제대로 힘있게 살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보다 확실하게 알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에 따라 살아 내야 하는 점은, 육신의 생명이 끊어진다 해서 모든 게 끝장 나 버리고 우리 존재가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활 신앙을 통해서 적어도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이 점을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육신의 몸을 벗으면 영의 몸을 입으면서 우리의 참된 생명을 계속 이어 나간다는 진리입니다. 육신의 몸이 칠팔십 년의 문제였다면 영의 몸은 영원의 문제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있을 때가 중요하고 본질적이며 사후란 무슨 덤으로 부가되는 것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 이후가 더욱더 중요하고 본질적이며 육신의 몸을 입고 있다는 것은 죽음 이후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한 예비 과정에 해당합니다. 이 예비 과정 동안에 주님에 대한 이해 및 사랑 그리고 이웃 인간들에 대한 이해 및 사랑을 배우고 익혀, 죽음 이후에 주님과 하나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려 나가는 것이 현세에서 육신을 걸치고 살아가는 목적입니다.
죽고 나서 구체적인 우리 삶의 모습이나 여정에 대해서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발현하신 사건들을 통해 대충의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편적이긴 하나 임사 체험자들의 많은 증언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가 현세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내지 실재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진리와 생명에 가득 찬 세상 내지 더 참된 실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각적으로 보고 듣고 하면서 알아듣고 있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할 것은 현세의 이 세상과 죽고 나서의 저 세상을 별개로 알아들어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두 세상을 합해 하나의 온전한 세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세의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내는가 하는 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온 삶의 여정을 통해 만들어낸 자신의 모습이 저 세상에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현세의 우리 인생이란 죽음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 작업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죽음을 늘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우리 삶은 제대로 방향을 잡아 나갈 것입니다.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마음과 열정을 쏟지 일시적이고 헛된 세속적 쾌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죽음이 설렘과 희망으로 다가옵니까? 육신의 고치 속에 갇혀 그게 전부인 줄 알며 살다 죽을 게 아니라 고치를 벗고 나와 나비가 되어 훨씬 더 깊고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유시찬 신부(예수회)
199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원 말씀의 집 원장, 서강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 예수회영성센터 피정지도 사제로 활동 중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