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는…” 공관 복음서 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찾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 나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에는 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공간적인 장소를 나타내는 것이기 보다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중요한 하느님 나라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항상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냥 ‘단순하게 말씀하시지 왜 비유로 말씀하셨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전혀 접해보지 못한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비유가 더 적당하리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비유를 들지 않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라고 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비유는 사람들이 흔히 ‘저절로 자라는 씨의 비유’라고 부르는 내용입니다. 짧은 비유이지만 사실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이 비유의 중심에는 씨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은 수확 때에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그는 어떻게 그리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물론 땅에 뿌려진 씨가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양분이나 물, 그리고 빛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비유에서 들려주는 것은 씨 뿌린 농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씨는 자라서 영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모습이라고 표현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듯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저절로 자라나는 것처럼 성장합니다. 신기하게 저절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누구에 의해 성장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 역시 그렇습니다.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 그 완성을 향해 가는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성장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쉽게 알지 못할 뿐, 그것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1독서인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도 이와 비슷합니다. 구약성경에 ‘향백나무’는 하느님 백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향백나무의 순을 따서 심으면 그것은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됩니다. 이 말씀 역시 복음서에서 말하는 비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역시 사람들은 순이 자라 크고 단단한 향백나무가 되기 전까지 그것을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시작에서 출발하지만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하느님의 나라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말씀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성장해 가는 하느님의 나라,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크게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도 커져만 가는 하느님의 현존은 육체적인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가끔은 없는 것처럼, 또 체험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씨앗이 자라듯, 순이 자라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듯, 그것은 자라고 성장하고 우리 안에 열매를 맺습니다. 신앙은 이런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신앙을 통해서는 체험하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확신 안에서 믿음을 통해 살아간다면 하느님의 현존을, 그분의 다스림을 그리고 그분의 나라를 깨닫고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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