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해방촌성당 성모상 바로 옆에 장독 28개가 줄지어 서 있다. ‘성당에 웬 항아리?’라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것들의 정체는 해방촌본당(주임 이영우 신부) 다사리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직접 담근 고추장과 된장, 간장이다.
2014년 2월 창립된 신생 협동조합 다사리에 지난 한 해 동안 1600만 원의 매출을 선사한 효자제품이자 주력상품이다. 올해 행정자치부가 선정한 우수 마을기업으로 뽑힌 다사리의 전통장은 이제는 본당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자랑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본당이 협동조합을 시작한 것은 이영우 주임신부의 농담 같은 한 마디 때문이었다. “본당 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장을 담가서 나눠먹자”는 이 신부의 제안을 듣고 신자들은 처음에는 웃어 넘겼다. 좋은 생각임에 틀림없지만 장 담그기가 보통 일이 아닌데다가 도심 한 가운데서는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이야기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1년 간 이어졌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사업으로 진행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지인들을 통해 조사하면서, ‘협동조합’을 만들면 꿈같은 이야기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서울시에서 마을기업과 협동조합 지원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던 터라 본당 공동체는 과감하게 ‘도전’을 외쳤다.
이영우 신부를 비롯한 본당 신자 20여 명과 지역주민 7명이 한 명당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까지 출자해서 협동조합을 세웠다. 이름은 ‘다사리’로 정했다. 조선 중기까지 ‘모두가 잘 살자’는 의미로 사용된 순 우리말이다.
조합원들은 장 담그기에 앞서 믿을만한 재료들을 물색했다. 발품을 팔아가면서 찾은 재료들은 충북 괴산 농업협동조합 ‘웅골’의 우리콩 메주와 전남 신안지역 신자들이 직접 만드는 천일염이다. 거기에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 이순임 이사의 고급 조리법이 더해져 다사리 전통장이 완성됐다.
우리 땅에서 난 좋은 식자재와 조합원들의 정성이 어우러진 장맛은 일품이었다. 본당 노인대학 어르신들의 까다로운 입맛까지 사로잡았을 정도다. 초창기에는 본당 신자들이 하나, 두개씩 구입하더니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폭주했다. 인근의 후암동본당, 잠원동본당에서도 다사리 전통장을 주문했다. 판로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시작했던 조합원들은 예상보다 좋은 매출에 신이 났다. 올해는 선주문 량이 지난해 매출액의 2배에 달한다.
협동조합의 수익은 일정금액 조합원들에게 돌아갔다. 조합원 대부분이 60대로 구성돼 있어, 그야말로 지역 어르신 일자리 창출까지 된 셈이었다. 협동조합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남은 수익들을 모아 아이들을 위한 교육공동체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역 초등학교 급식에 전통장을 제공하는 사업을 현재 용산구와 협의 중에 있다. 또한 내년에는 행자부의 지원을 받아 매장도 오픈할 예정이다.
남기문 이사장은 “우리 협동조합의 기본은 신뢰다”면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신뢰를 기반으로 다사리를 지역 내에서 생산과 소비가 같이 이뤄지는 해방촌의 생활경제공동체로 성장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라고 말했다.
※구입 문의 010-8316-3020
카리타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