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은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주님께서 이 시대에 주시는 징표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 다양한 기획을 마련한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특별인터뷰를 통해 난마처럼 얽혀있는 민족화해 여정을 헤쳐 나갈 지혜를 함께 나누고 어깨 겯고 같이 걸어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다음은 김희중 대주교와의 일문일답.
▲최근 주교회의에서 담화문 ‘분단 70년을 맞는 한국 천주교회의 반성과 다짐’을 냈는데…
올해는 우리나라가 광복의 기쁨과 남과 북으로 분단된 아픔을 겪은 지 70년이 되는 해다. 분단과 갈등의 70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평화를 여는 해가 되기를 염원하는 국민 대다수의 뜻을 하나로 모으고 싶었다. 그동안 남북한은 ‘7·4 남북공동성명’(1972년)을 비롯해 ‘6·15 남북공동선언’(2000년), ‘10·4 남북공동선언’(2007년) 등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선언적인 의미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과거의 유물이어야 할 냉전의 극한 상황이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다. 내부 이념 갈등도 도를 넘어선 듯하다. 비정상적인 상황들이 사회 전반을 병들게 하고 있다. 신앙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민족 화해와 평화를 위해 나서야겠다는 주교들 뜻이 한데 모아졌다.
▲분단 70년 세월 동안 한국교회가 분단 극복을 위해 기울여 온 노력과 그 노력이 지닌 의미는?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을 실현하면서 민족의 평화 통일에 대비하여”(한국 지역 교회법전(200조) 1984년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가 발족했다. 단순히 북한 선교와 물질적인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적극적인 화해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민족화해’란 용어는 1991년 12월에 개최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서명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통해 ‘민족적 화해’라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천에서 이 용어가 확산된 것은 1995년 3월 출범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활동에 의해서다. 민족화해위원회(이하 민화위)라는 명칭에 북한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1998년 5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최창무 주교의 방북과 더불어 민화위를 중심으로 이뤄진 인도적 지원의 진정성이 확인된 이후 북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민화위는 ‘한국 천주교의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관한 사목지침’에 준하는 「한국 지역 교회법전」 201~203조에 따라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지속적인 기도운동을 통해 신자들에게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해왔다. 이를 통해 민족 화해와 평화공존, 평화통일에 대한 공감대 확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할 수 있게 된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민족화해 문제가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은데…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전쟁 직전 세대와 직후의 세대, 그리고 새로운 세대 간의 인식 차이가 있다. 또한 민족 화해나 통일에 대한 감정의 농도나 인식 차이가 적지 않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이기주의 풍조도 영향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현대사회의 가장 큰 죄악인 ‘무관심의 세계화’를 경계하도록 강력히 권고했다.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뜻 있는 많은 이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갈등 요소들이 결국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경색 국면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지난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지향적인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제는 소모적인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남북의 화해와 평화공존을 통해 모든 정파적 차이를 초월, 민족의 미래를 위한 길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민족화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소명은?
성경에 따르면 인간의 죄는 ‘분열’을 낳는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인간관계에도 균열이 생기게 한다. 형제간에 갈등을 일으키고, 이웃과 멀어지게 하며, 집단과 집단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한다. 죄로 인한 분열이 결국 하느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라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오셨다”(로마 5,1-11 참조)고 가르쳤다. 화해를 통해 죽음을 넘어 참된 일치를 이루는 일이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 화해를 이루려 세상에 오셨고, 이 화해의 거룩한 직분을 그리스도의 성사인 교회에 맡기셨다고 가르친다(2코린 5,18-20). 따라서 우리는 화해를 통한 일치의 삶이 구원의 표지임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신 마지막 기도가 바로 일치를 위한 기도였다는 사실(요한 17,21-23)을 기억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 8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 그 화해시키는 은총을 여러분의 마음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가르침을 따라 교회는 분단과 갈등의 벽을 넘어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무장하고, 화해와 일치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와 일치의 삶을 통한 부활의 증인으로서 소명을 받았다. 비록 현실이 어둡더라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기쁜 소식이 울려 퍼지도록 주님께 간청하며 각자 위치에서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통일이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 게 현실인데…
이런 현실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과 배경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물질주의적인 경쟁사회에서 경제생활을 보장해주는 직업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여기지 않나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도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 공존이 이뤄지면 더욱 쉽게 풀릴 수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따라서 민족 화해와 평화를 위한 교육과 더불어 이에 적합한 작은 실천이라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들이 민족 화해와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의식화 과정이 필요하다.
▲해방 이후 줄곧 이어져온 남과 북, 남남 갈등을 극복해나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서로가 자주 만나야 한다. 정부 당국자들끼리의 만남뿐만 아니라 종교인, 민간인들끼리의 만남이 자주 이루어지면 인식 차이도 좁힐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상호 신뢰회복이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신뢰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 언행을 삼가고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인 교류 협력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특별히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 공존을 이룬다면 남북한은 물론이요 이해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주변 나라들도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평화, 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대단히 유익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주변 강대국들에 우리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남북한 당국자들이 우리 민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통찰하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주변 국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민족화해를 위한 비전과 전략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데…
우선 남북한 교회 여러 계층 간의 만남을 자주 가지며 대화의 기회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 자주 만나 대화하면서 상대방과 오해를 풀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며 교류협력을 활발히 가져야 한다.
북한의 공식 기구 가운데 하나인 조선카톨릭교협회와의 긴밀한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시급하게 평양 장충성당의 대보수가 필요한데, 이 보수사업을 지원하는 문제를 비롯, 조선카톨릭교협회를 통한 대북인도적 지원, 사제 상주, 아니면 몇 차례 대축일만이라도 북한 교우들을 위한 성사집전의 가능성을 협의하는 것도 실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몇 해 전에 이미 제안한 바 있지만, 북한이 원한다면 북한 당국의 추천 하에 우리나라 신학교에서 사제를 양성하는 가능성도 상호 협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끝으로 민족화해와 관련해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공동체성 회복이 필요하다. 무관심의 바다에서 자비의 샘이 되도록 당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더 깊이 생각하고 ‘자비의 희년’을 준비하면서 개인적인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남북 간의 관계에서도 희년의 의미가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교황은 지난해 11월 9일 바티칸 삼종기도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언급하는 가운데 “벽이 있는 곳에는 마음의 문도 닫혀 있다. 우리에겐 벽이 아니라 다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도 교황의 호소를 귀담아 듣고 남북 간에 자비로운 용서의 다리를 놓는데 앞장 설 수 있기를 바란다.
2000년 12월 대림 첫 주일에 한국교회는 보편교회의 모범을 따라 한국 주교회의 이름으로 과거사 반성 문건인 ‘쇄신과 화해’를 발표한 바 있다. 20세기에 빚어진 한국교회의 잘못을 7개 항목으로 나열했는데 그 가운데 민족사 및 분단 상황과 관련해 “우리 교회는 광복 이후 전개된 세계 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빚어진 분단 상황의 극복과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홀히 한 점을 반성하고 이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마음 아파합니다”라고 반성했다.
현재로서는 남북 화해와 평화는 우리 힘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러나 모두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기도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될 때 은혜로운 열매를 맺어주시리라 믿고 결코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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