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고난의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와 탈출, 그리고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까지 그들의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고난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빌론에 의해 성소가 파괴되고 유배를 가기도 했으며, 마케도니아와 로마의 정복 전쟁의 여파로 주권을 상실한 채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이스라엘에게 신명기의 말씀은 분명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너희가 하늘 끝까지 쫓겨났다 하더라도,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곳에서 너희를 모아들이시고 그곳에서 너희를 데려오실 것이다.” 흩어진 백성을 모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의 약속이자 이스라엘의 염원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과 함께 주어지는 것은 하느님과의 화해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지켜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일치를 위한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역시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나라를 잃는 아픔도 겪었으며 민족끼리의 전쟁을 통해 여전히 분단된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것에 이제 너무 익숙해져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여전히 갈등은 끊이지 않고 어느 한쪽도 양보하는 것이 어려워 보입니다.
독일에서 공부를 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1990년의 통일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통일은 되었지만 이런저런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어떤 논리들, 이념이나 경제적인 논리를 떠나 같은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었다는, 한 나라를 이루었다는 것은 분단국가에서 온 유학생에겐 부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용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냐는 베드로 사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답하십니다. 조건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용서는 조건이 없을 때 가능하다는 말씀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조건이 있다면 용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흔히 용서받은 체험이 없다면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 사랑받은 적이 없다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미 우리가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신앙인들은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체험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위로가 되는 말씀이지만, 한 편으로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기도하면서 무엇보다 넓고 자비로운 마음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현실을 잊지 않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을 조금은 미뤄두고 좀 더 다가설 수 있는 용기를 청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사랑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안에 평화가 자리하기를 기도하는 한 주가 되면 좋겠습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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