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사는 6월 13일 ‘미래의 북한전문가’들이 살고 있는 서울의 한 탈북 청소년 그룹홈을 찾았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가 운영하고 있는 이 그룹홈에는 6명의 청소년들이 검정고시 준비나 일반학교를 다니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 현장에서 탈북 청소년들의 통일에 대한 생각을 전한다.
■ 탈북 청소년 그룹홈
“초코파이요? 저희는 그런거 안 먹어요.”
지난 2013년 동생과 함께 한국땅을 밟은 예비신자 정희정(가명·19)양이 손사래를 쳤다. 의외였다.
평소 “북한에도 초코파이가 있느냐”는 친구들의 물음이 오히려 황당했다는 정양. 한국산 초코파이 맛은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양의 입맛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자가 수박을 사갔기에 망정이지 초코파이를 선물했더라면 낭패를 당할 뻔했다.
신발을 벗고 현관으로 들어서니 북한말만 빼고는 남한의 일반 가정집과 차이가 없었다. 두 사람이 한 방을 쓰고 있었다. 거실도, 부엌도 익숙한 풍경 그대로였다. 매주 토요일은 사회복지기관 등지로 봉사활동을 나가는 일정인데 기자와의 만남으로 일정이 변경됐단다.
이들의 평소 일정은 빡빡했다. 그룹홈 실무를 담당하는 김향숙(토마) 수녀는 “탈북 청소년들은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촘촘한 일정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주중에 학교나 학원을 가고, 주일에는 인근 성당에서 수녀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 남한사회 적응을 위해 음악회나 영화수업 등 각종 문화행사 일정도 수두룩하다. 빼곡한 일정임에도 불평하기는커녕 오히려 배우는 게 많다며 입을 모으는 게 신기했다.
특히 정양은 “여기서 언니(탈북 청소년)들과 같이 지내면서 배려하는 법, 검정고시 정보 등 다양한 것을 배운다”며 “학원 다녀오면 언니들이 밥도 챙겨주고, 수녀님들은 진짜 부모님처럼 우리를 돌봐주신다”고 말했다.
이 그룹홈에 있는 탈북 청소년들의 실제 부모들은 대부분 남한에 정착한지 오래다. 이곳에는 배움에 뜻을 둔 북한이탈주민 자녀들이 모여 있었다.
■ 북한에 대한 무관심
“남한 청소년들이 통일이나 북한에 관심이 없으니 답답해요. 우리가 빨리 남한사회에 적응해서 통일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어요.”
통일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2년7개월째 그룹홈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신수정(가명·마리아·24)씨가 눈을 반짝였다. 향후 어떤 모양새로 전개될지는 몰라도, 통일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기여를 하고 싶단다.
북한에서 수의사의 꿈을 키워왔던 신씨는 하나원(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 지원을 위한 통일부 소속기관) 수료를 하자마자 그룹홈으로 들어왔다. 그룹홈에서 신씨는 오랫동안 수녀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봉사하는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전문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나 자신을 바치겠다”고 말할 정도로 진지했다. 심지어 수도자가 꿈이라는 비밀(?)도 털어놨다.
“탈북 청소년들은 북한과 남한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해요. 북한에 대해 누군가가 물어보면, 저는 중개자 입장에서 설명해요.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죠. 그런데 남한 청소년들은 이런 제 상황까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지난해 11월 북한 유소년 축구단이 7년 만에 남한을 방문해 경기를 펼쳤을 때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가장 곤란했다는 신씨. 그는 앵커가 “북한이 이겼으면 좋겠다. 북한선수들에게 패배란 인생에서 치명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발언에 매우 고마워했다. 이어 “통일은 강요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삶의 방식이 서로 다르니까 남과 북이 서로 조화롭게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탈북 청소년들)는 남한사회 안에서 공감하고 마음을 맞춰가려고 해요.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겠죠. 그래도 우리가 먼저 징검다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양강도 갑산이 고향인 신씨는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동료들과 기도한다.
“남한에서 성공하면 고향으로 가려고요. 고향 사람들에게 남한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요. 고향 사람들이 잘 살게 되고, 북한이 잘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남한과 통일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 통일, 통일, 통일
신씨가 말을 마치자 곁에 있던 예비신자 황유미(가명·23)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황씨는 통일을 위해 북한에 대한 남한의 관심이 더 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한 청소년들은 아직도 북한 사람들이 잘 못 먹고, 잘 못 입고 다닌다고 생각해요. 남한 친구들이 저에게 ‘이런 것도 먹어?’라고 물을 때면 참 섭섭했죠.”
남한 청소년들로부터 북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황씨 역시 친절히 설명해주려고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황씨의 설명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피상적 호기심 수준이었던 셈. 황씨는 남한 청소년들과의 괴리가 컸다고 고백했다.
“남한 청소년들은 통일이나 북한에 깊은 관심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말이 잘 안 통하죠. 오히려 어르신들과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에요. 교회에는 청소년들보다 어르신들이 많아서 우리를 잘 이해해주는 편이에요.”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한 물음에도 황씨는 거침이 없었다.
“방송에 출연하는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조국(북한)을 헐뜯거나 부풀려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 한 마디가 남한사회에 전하는 영향이 큰데 너무 조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있는 황씨는 생계 때문에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지 못하는 신자 북한이탈주민의 현실에도 안타까워했다.
당장 남한 청소년들의 학습수준 따라가기도 벅찬데 ‘통일’이라는 말마디만 나오면 황씨를 비롯한 모두가 눈을 반짝였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장래희망이 아직 없었지만, 남한사회에 차근차근 적응하며 남과 북을 위한 ‘통일 전문가’로 열매를 맺어가고 있었다.
▲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신수정씨는 내년 졸업을 앞두고 틈틈이 책상에 앉아 공부한다. 그는 빨리 적응해 남한에 통일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 탈북 청소년은…
교육부는 ‘탈북 청소년’이라는 용어에 대해 정책적으로 ‘북한에서 출생해 현재 남한에 살고 있는 만 6세 이상 24세 이하의 북한이탈주민’으로 정의한다. 아울러 ‘부모 중 한 사람 이상이 북한이탈주민이고, 중국 등 제3국에서 출생한 아동과 청소년’도 포함시키고 있다.
반면 통일부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에 따라 탈북 청소년을 ‘북한이탈주민’으로 보고 있으나,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 자녀는 제외하고 있다.
‘탈북 청소년’이라는 용어가 관련 부처 간 연구·정책·서비스 지원 부문에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채 혼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탈북 청소년은 남한 입국 초기 하나원에서 3개월간 남한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기초교육과 진로진학상담, 기초 취업교육 등을 받는다. 이들은 북한을 벗어나 제3국 체류과정에서 탈출과 도피로 인한 심리·정서적 상처를 안고 있다. 남한과 다른 교육문화와 학습경험을 겪은 데다 학습공백으로 인한 문제와 남한 정규학교 편입과정에서 학령과 언어 등의 차이로 적지 않은 어려움에 빠져있어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