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은 우리에겐 특별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미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교황님의 한국 방문과 시복식은 눈에 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사를 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 때문입니다. 단지 교황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보듬을 수 있었던, 바쁜 일정 중에도 그것을 바라볼 수 있었던 모습은 개인적으로 여전히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지만 잘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큰 감동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두 명의 인물을 통해 보여지는 ‘간절함’입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딸을 살려 달라고 간절하게 청합니다. 그러던 중에 병을 앓고 있던 한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낫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합니다. 기적 이야기를 떠나서 이 두 인물이 보여주는 간절함은 마르코 복음이 전해주고 싶은 숨겨진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에 대한, 구원에 대한 간절함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동기가 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오늘 제1독서인 지혜서는 정의롭고 선하신 하느님과 그렇지 못한 세상에 대해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우리 일상의 모습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정의는 죽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지만 실제로 우리의 모습에서 가끔은 죽음의 모습을, 생명을 경시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충분히 “왜?”라는 질문을 던질만 합니다. 그것에 대해 지혜서는 이 모든 것들이 ‘악마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하느님 뜻에 반해서 벌어지는 실상의 모습들에 대해 악마의 소행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선한 세상에 왜 악이 있는지, 하느님의 정의가 있지만 왜 우리는 불의를 경험하는지, 생명을 위해 만드신 우리 안에 왜 죽음의 모습들이 있는지 묻고 싶을 때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왜?”라는 질문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을 향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어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마치 하느님의 정의는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잘 실천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우리의 간절함과 하느님의 뜻.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이지만 우리의 간절함이 부족하다면, 우리 안에서 그것을 실현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간절함은 있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것을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나부터 실천하는 것 역시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어려움이나 문제들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보다는 우리에게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서로 남을 탓하면서 결국에는 모든 책임을 하느님께 돌리기도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닌, 내게 필요한 것을 위해 간절하게 청한다면 그것을 하느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내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은 사실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이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원하는 것이 항상 유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필요한 것을 간곡히 청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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