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영세 대부를 서 준 분은 자신의 꼬인 삶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나는 제수씨 소원이 이 친구 성당 다니는 것인 걸 알고 있었는데…. 그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친구 영세 받는 것 때문에 내가 몇 달을 죽는 줄 알았어요.”
나는 대부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원래 천주교 신자면, 냉담 풀고 편안하게 친구의 영세 대부를 서 주면 되잖아요!”
그러자 대부님은
“신부님, 실은 제가 영세 받은 후, 10년 넘게 냉담을 했고, 더욱 중요한 건 제가 견진성사를 안 받았다는 거예요.”
그 순간 나는 모든 상황이 한순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형님’이 말을 이으며,
“이 친구가 나를 영세 시키려고 냉담을 풀었어요. 그 길로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 받고, 보속도 듬뿍 받았대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대부가 되기 위해서는 본당에서 견진교리를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교리반 시작할 즈음해서 이 친구 역시 6주 동안 견진교리를 받았던 거예요. 견진 교리가 금요일 날 저녁에 있는 바람에 이 친구는 지방에서 근무를 마치자마자 그 길로 매주 기차타고 서울로 와서 견진교리를 받은 거예요.”
그러자 대부님은 긴 한숨을 쉬며,
“당시 회사 일이 바빠서 금요일 오후 5시에 회사를 빠져나오는 것이 살얼음을 걷는 것 같았어요! 속으로 ‘견진교리 받다가 회사 잘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무튼 6주 동안은 제 인생 최고로 열심히 살면서, 금요일만 되면 심지어 부하 직원 눈치까지 보면서 회사를 나왔어요. 그리고 이 나이에 회사에서 왕따 당할까봐 월요일에는 일부러 부하 직원들 밥 사고, 상사에게 아부 떨고! 그 후로 오늘까지 이 친구 영세 대부되려고 깨끗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영세를 받았으니 저는 해방이에요, 해방!”
그런 다음 대부님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려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 형님 세례 대부 섰으면, 이제 견진 대부도 서 주셔야지요!”
이 말을 듣자마자, 대부님은 깜짝 놀라서 맥주가 목에 걸리더니 그만 입 밖으로 넘어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님 얼굴을 보는데, 입에서도, 코에서도 심지어는 눈에서도 맥주가 줄줄 흘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대부님은 ‘미안하다’며 얼굴을 닦더니,
“실은 견진 교리 3번인가, 4번 정도 받을 때, 다짐했어요. 이 친구 영세 받으면 다시 쉬기로! 그런데 그러지 못 하겠더라고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신앙에 충실해지더니, 신앙의 기쁨도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우리 아내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아무튼 친구 영세 받게 하다가 내가 좋은 사람 되는 것 같았어요. 그 후로 잘은 못해도 미사 꼬박꼬박 잘 다니는 신자로 살고 있어요.”
좋은 술친구가 영적인 도반(道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서로 대부와 대자가 되어 속에 있는 깊은 고민까지 털어놓고 지냅니다. 좋은 대부는 때론 좋은 대자가 만들어 주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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